헬로티 서재창 기자 |
삼성전자가 미국 내 파운드리 제2공장 부지를 확정하면서 '2030 시스템 반도체 1위' 목표 달성을 위한 작업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최종 발표가 남아 있지만 제2공장 후보지는 텍사스주 테일러시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170억 달러(20조 원) 규모의 초대형 투자 계획이 공개된 이후 국내를 비롯해 미국의 뉴욕과 애리조나 등 여러 후보지가 경쟁을 벌였지만,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약속한 텍사스주 중부 소도시 테일러가 최종 낙점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투자는 삼성이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세계 1위를 차지하겠다는 시스템 반도체 2030 비전의 일환이다. 삼성은 파운드리 업계 1위 기업인 TSMC에 비해 점유율 측면에서 여전히 뒤지지만, 첨단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는 미국을 중심으로 파운드리 기술력을 앞세워 추격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삼성전자가 미국 제2 파운드리 공장 부지로 테일러를 최종 낙점했다고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삼성전자 측은 23일에도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는 원론적 입장을 고수했지만, 금명간 이 같은 투자 계획이 공식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1997년 텍사스주 오스틴시에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고 파운드리 공장으로 운영해왔다. 기존의 파운드리 인프라와 전문인력, 접근성을 고려할 때 삼성의 미국 제2 파운드리 공장이 오스틴으로 갈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삼성은 지난해까지 오스틴 공장 인근에 신규 공장 대지를 매입하고 오스틴과 신규 투자 관련 인센티브 협상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올해 초 미국 전역을 강타한 기습 한파가 변수였다. 오스틴의 단전·단수 결정으로 삼성 반도체 공장은 한 달 넘게 셧다운 됐고, 이로 인해 삼성은 최대 4000억 원 규모의 피해를 봤다.
이후 재발 방지와 피해 보상, 신규 투자 인센티브를 두고 협상이 길어졌다. 삼성전자는 당초 오스틴 투자가 확정될 경우 올해 2분기 신규 공장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지지부진한 협상으로 착공 시기는 늦어졌다.
오스틴과 협상이 길어지는 사이 테일러가 파격적인 세금감면 혜택을 약속하며 유력 후보지로 부상했다. 오스틴과 인접한 테일러는 인구 1만7000명의 소도시로, 삼성전자의 기존 파운드리 공장이 있는 오스틴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있어 입지가 좋은 편이다.
테일러 측의 3대 협상 창구 가운데 테일러시와 윌리엄슨 카운티는 올해 9월 삼성의 반도체 공장 재산세 대부분을 감면해주는 인센티브를 만장일치로 확정했고, 테일러 독립교육구도 최근 2억9200만 달러(약 3442억 원) 규모의 추가 세금감면을 약속했다.
삼성이 테일러시와 윌리엄슨 카운티, 테일러 독립교육구로부터 받는 전체 세금감면 혜택은 10억 달러(약 1조2000억 원) 이상일 것이라는 계산도 나온다.
현재 미국에 머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번 출장 기간 파운드리 2공장 투자 결정을 매듭짓고, 관련 내용을 미 백악관 고위 관계자와 미 의회 핵심 의원들과 사전 공유하면서 협력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600만 제곱피트(약 55만7000㎡) 규모의 부지에 신규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삼성이 테일러에 제출한 서류에 따르면 내년 1분기 착공에 들어가 2024년 하반기 생산을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 자료에서 "새 반도체 공장은 삼성 파운드리 사업의 첨단 반도체 제품을 생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 오스틴 공장은 14나노미터 공정이 주력인데 삼성의 새 공장에서는 5나노 이하 또는 3나노 이하의 차세대 초미세 공정을 위한 시설이 들어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를 위해 첨단 극자외선(EUV) 장비도 반입될 전망이다.
기존 오스틴 공장이 14나노 기반 IT 기기용 전력 반도체와 통신용 반도체를 생산했다면 테일러 공장은 인공지능(AI)과 슈퍼컴퓨팅 등 4차 산업혁명으로 수요가 급증한 5나노 이하 차세대 반도체 공정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글로벌 IT 기업 본사가 몰려 있어 '반도체의 본고장'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삼성은 신규 파운드리 공장을 중심으로 미국의 풍부한 첨단 반도체 수요에 적극 대응할 계획이다.
실제로 테일러 부지 주변으로는 미국 최대 PC 제조사인 델 본사를 비롯해 AMD·ARM·퀄컴 등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들의 연구소와 지사가 들어서 있다. 다만 삼성전자 측은 아직 신규 파운드리 공장의 구체적인 설비와 장비 반입 계획은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번 투자를 계기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맞서 반도체 공급망 내재화에 나선 미국과의 '반도체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됐다. 삼성전자는 기존 오스틴 공장에 이미 170억 달러(약 20조2000억 원) 이상을 투자했는데 이번 신규 투자까지 합치면 삼성의 미국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는 40조 원 이상이 된다.
삼성전자가 공격적으로 확장하는 파운드리 생산라인은 현재 국내(기흥·화성·평택)와 미국(오스틴)에만 있다. 중국에는 삼성 낸드플래시와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이 있다.
이번 미국 파운드리 제2공장 투자는 삼성전자가 현재 글로벌 1위인 메모리 반도체 분야뿐 아니라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2030년까지 세계 정상에 오르겠다는 시스템 반도체 2030 비전의 중요한 한 걸음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에서 각각 43.6%, 34%의 점유율(올해 2분기 매출 기준)을 기록하며 명실상부한 글로벌 1위 기업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파운드리 분야에선 1위 기업 TSMC와의 격차가 여전한 상황이다. 대만의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매출 기준)은 TSMC가 52.9%로 압도적 1위였고, 2위인 삼성전자는 17.3% 수준에 그쳤다.
초미세 공정 기술력이 필요한 10나노 이하 경쟁에서는 TSMC와 삼성전자가 양강 구도를 이루고 있는데 삼성전자는 차세대 3나노 이하 공정에서 기술력을 앞세워 TSMC를 추월한다는 계획이다.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장(사장)은 지난달 열린 '삼성 파운드리 포럼'에서 내년 상반기에 3나노 1세대 파운드리 제품 양산에 돌입하고, 2025년에는 2나노 제품을 양산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TSMC의 내년 하반기 3나노 양산 계획을 추월하겠다는 의미다.
특히 삼성전자는 차세대 트랜지스터 구조인 'GAA'(Gate-All-Around)를 3나노부터 적용해 성능을 더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GAA는 기존 핀펫 기술보다 칩 면적은 줄이고 소비전력은 감소시키면서도 성능을 높인 신기술로, TSMC는 2나노부터 GAA 기술을 적용할 예정이다.
아울러 삼성전자는 초미세 공정 기술력 확보와 함께 파운드리 생산능력을 더 키우기 위해 시설 투자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은 지난 5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부문의 투자 규모를 종전 133조 원에서 171조 원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