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기획특집

공장이 하나의 거대한 로봇 된다…KAIST, 피지컬 AI로 제조 혁신 선언

URL복사

대한민국 제조업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피지컬 AI(Physical AI)’ 기반의 자율제조 시대가 본격화되며, 공장은 이제 단순한 생산시설이 아닌 ‘거대한 로봇’으로 진화 중이다. 장영재 KAIST 교수는 디지털트윈 기반의 스마트 제조 플랫폼인 'SDF(Software Defined Factory)'를 중심으로 강화학습, 로봇 협업, 맥락 이해형 AI 등 첨단 기술을 통합한 차세대 공장 운영 모델을 제시했다. 공장을 멈추지 않고 소프트웨어로 업그레이드하는 이 개념은 중소기업에도 즉각적인 설비 적용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수십 억 원의 비용 절감 효과까지 입증했다. 제조업의 미래, 그 중심에 피지컬 AI가 있다.

 

 

공장이 하나의 로봇으로…‘피지컬 AI’의 시대가 온다

 

디지털 혁신은 이제 공장의 외형만 바꾸는 것을 넘어, 개념 자체를 다시 정의하고 있다. 장영재 KAIST 교수는 이를 “공장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로봇으로 만들자”는 철학으로 설명한다. 피지컬 AI는 단순히 인공지능이 품질 검사나 설비 모니터링에 쓰이는 수준을 넘어, 공장의 모든 자산과 설비, 사람, 로봇, 데이터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하나의 지능형 엔티티로 만들어가는 기술이다. 기존 공정 자동화는 각 개별 장비의 지능화에 집중했지만, 피지컬 AI는 공정과 설비 전체를 통합해 실시간으로 판단하고 작동하는 자율적 시스템으로 진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실제 운영 방식도 바뀐다. 과거에는 작업자가 공장 안에서 직접 장비를 조작했지만, 자율제조 공장에서는 작업자와 AI가 디지털트윈 기반의 가상공장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현실 공장은 그 결과에 따라 자동으로 움직인다. AI는 상황을 인식하고 판단한 뒤 로봇에 명령을 내려 실물 제조 라인을 작동시키는 식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단일 로봇의 지능화가 아닌, 다수의 로봇과 설비가 협력하는 ‘콜라보레이티브 인텔리전스’라는 개념으로 구체화된다. 즉, 공장은 단순한 기계들의 집합체가 아닌, 하나의 유기체로서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은 단지 이상적인 비전이 아니라, 지난 10여 년간 KAIST 연구팀이 실제로 개발하고 실증해 온 결과물이다. 특히 장 교수는 “공정 단위가 아닌 공장 전체를 로봇처럼 설계하고 운영해야 진정한 자율제조 시대를 열 수 있다”며, 플랫폼 기반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회성 SI(시스템 통합) 방식이 아닌, 반복 적용 가능한 표준화된 구조를 기반으로 중소·중견기업도 쉽게 도입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강화학습과 디지털트윈이 만났을 때: 공장 지능화의 실현

 

피지컬 AI의 핵심 기술 중 하나는 바로 ‘강화학습’이다. 기존 머신러닝이 방대한 학습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지도학습(Supervised Learning)이라면, 강화학습은 시행착오를 통해 보상을 받아 스스로 전략을 최적화해 나가는 구조다. 이는 제조업처럼 수많은 변수와 물리적 제약이 얽혀 있는 환경에서 특히 유용하다. 하지만 실제 공장에서 시행착오 기반 학습을 허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로봇이 오류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생산성이 떨어지고, 장비가 손상될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디지털트윈 기반의 가상 시뮬레이션 환경이다. 장 교수는 “가상공간에서 AI가 다양한 시나리오를 실험하고, 성공 확률이 높은 행동을 학습한 뒤 실공정에 전이(transfer)시키는 방식”을 제안했다. 특히 제로샷 트랜스퍼 러닝(zero-shot transfer learning)을 통해, 실제 환경에서의 학습 없이도 로봇이 빠르게 실무에 투입될 수 있게 된다. 이는 단순한 알고리즘이 아닌, ‘물리적 개념을 이해하고 현실에서 실행하는 AI’라는 점에서 피지컬 AI의 근본 철학을 반영한다.

 

실제 예시로, KAIST는 이러한 구조를 통해 약 280대의 로봇이 협업하는 헝가리 물류공장에서 데드락 없는 시스템을 구현했고, 기존 알고리즘 대비 성능은 최대 30% 향상되었으며 로봇 수도 40대 가까이 줄였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40억 원 규모의 절감 효과다. 이처럼 강화학습과 시뮬레이션은 단지 연구를 넘어, 실제 제조 환경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피지컬 AI는 데이터를 넘어서 물리 세계까지 이해하고 작동하는 AI, 즉 진정한 지능형 제조를 가능케 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SDF: 소프트웨어로 운영되는 새로운 공장 구조

 

기존 공장의 가장 큰 한계는 ‘유연성 부족’이었다. 설비를 변경하거나 기능을 확장할 때마다 하드웨어를 교체하고, 미들웨어를 수정하며, 상위 시스템을 전면 재구성해야 했다. 이 과정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수반했고, 대부분 수백억 원 단위의 프로젝트로 확장되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된 해법이 ‘소프트웨어 정의 공장(Software Defined Factory, SDF)’이다. 장 교수는 이를 “공장을 멈추지 않고 거대한 앱(App)으로 운영하는 개념”이라고 정의한다.

 

SDF의 핵심은 공장의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구조를 정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AGV(무인운반차), AMR(자율이동로봇), OHT(천장형 운송로봇) 등 다양한 로봇들이 동일한 소프트웨어 플랫폼 위에서 구동된다면, 개별 로봇마다 다른 제어 시스템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이는 운영의 효율성을 비약적으로 높이고, 시스템 확장의 유연성을 제공한다. KAIST는 현재 이러한 개념을 실현한 공장을 운영 중이며,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제조업계 전반에 플랫폼 보급을 추진하고 있다.

 

SDF 기반 시스템은 단순히 관리 효율화에 그치지 않고, 인공지능이 공정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즉, 공장 내부의 다양한 설비들이 SDF로 통합되어야 AI가 실시간 판단과 제어를 수행할 수 있다. 이는 기존 스마트 팩토리 개념의 확장판이자, 완전한 자율제조를 향한 필수적 전환이다. 장 교수는 이를 통해 “로봇의 지능화가 아닌, 공장의 지능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라며, 제조 환경의 본질적 변화 필요성을 강조한다.

 

AI는 공장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을까?

 

피지컬 AI의 또 하나의 핵심은 AI가 ‘맥락’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갖추는 데 있다. 지금까지의 제조 AI는 특정 공정을 자동화하거나, 품질 데이터를 분석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피지컬 AI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물리적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컨텍스트 AI’를 지향한다. 예를 들어, 테이블에 소스가 떨어지면 로봇은 이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새로운 소스를 꺼내기 위해 냉장고로 이동하는 순서를 예측한다. 이처럼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행동을 AI가 자율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비전 분석이 아니라, 시공간적 흐름과 물리 역학을 함께 반영하는 통합형 AI가 필요하다. 장 교수는 “기존에는 사람이 직접 경로를 코딩하고, 로봇이 일일이 수행해야 했지만, 이제는 AI가 시작과 종료 지점을 인식하고 중간 경로를 생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기술은 특히 물류창고나 제조공장에서 발생하는 ‘교착상황’를 자동으로 해소하는 데 유용하다.

 

실제로 KAIST는 이러한 기능을 활용해 데드락(Deadlock) 자동해결 알고리즘을 개발했고, 복잡한 레이아웃에서도 로봇이 서로 간섭 없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AI가 맥락을 이해하고, 스스로 경로를 조정하며, 예측 행동까지 수행하는 기술은 앞으로의 제조업에서 ‘사람처럼 판단하는 공장’을 현실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플랫폼 수출의 기회, 대한민국 제조업의 반격

 

피지컬 AI와 SDF는 단지 공장 내부 혁신을 넘어, 대한민국 제조업의 새로운 수출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장 교수는 “지금 세계가 제조업으로 회귀하고 있지만, 진짜 위협은 미국의 IT 기업들이 제조업에 진출하는 것”이라며, 소프트웨어 중심의 제조 플랫폼이 글로벌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이미 롯데클라우드 공장은 독일 기업이 전체 MES·ERP 시스템을 턴키로 공급했고, 제어기·센서 등도 모두 독일산으로 채워졌다. 이처럼 글로벌 제조 플랫폼 시장은 이미 국가 단위의 산업 생태계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KAIST는 현재 SDF 기반 시스템을 클라우드 플랫폼으로 전환해, 중소기업에 무상 제공할 수 있는 구조를 기획 중이다. 이는 소프트웨어 설계, 시뮬레이션, 로봇 경로 플래닝, 레이아웃 자동화 등 공장 설계 초기 단계부터 도입이 가능하며, 중견·중소 제조업체가 고비용 설비 투자 없이도 디지털 전환을 실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2차전지 등 다양한 제조 경험을 축적한 만큼, 산업 연합체 중심의 글로벌 공급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장 교수는 “지멘스를 이겨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오히려 우리가 더 빠르게 혁신을 만들 수 있다”며, ‘소프트웨어 기반 제조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산업군을 주도할 수 있는 자신감을 피력했다. 제조업을 단순한 제품 생산이 아닌, 운영 노하우를 수출하는 플랫폼 산업으로 전환하는 것, 그것이 피지컬 AI가 대한민국에 제시하는 새로운 기회다.

 

공장의 개념을 다시 정의할 시간

 

피지컬 AI는 단지 기술이 아니다. 공장과 제조업을 보는 관점을 전면적으로 전환하는 철학이다. 소프트웨어 중심 공장, 로봇의 협업, 가상과 현실의 통합, 자동화된 설계와 운영—이 모든 요소가 결합된 ‘미래 제조’의 모습이다. 장 교수는 특히 “제조업이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것을 넘어, 소프트웨어로 운영되고 수출할 수 있는 시스템 그 자체로 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조 강국 대한민국이 피지컬 AI를 통해 글로벌 제조 플랫폼 리더로 도약할 수 있을지, 이제는 실행과 기획의 정교함이 답이 될 것이다.

 

오토메이션월드 임근난 기자 |


* 이 글은 지난 6월 25일 ‘피지컬 AI와 SDx가 창조하는 제조와 자동화산업의 미래’를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 장영재 카이스트 교수가 발표한 내용을 재구성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주요파트너/추천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