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sport!!” 2007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17년 전 나는 회사의 미국 주재원으로 선발되어 4년 반 정도를 미국 남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가족들과 같이 미국에 입국하는 터라 모든 과정을 내가 챙겨야 했기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자식이 3명이나 되니 말이다. 우리 가족 다섯 명이 하나의 입국심사대에 우르르 서 있었다. 아직 어린 둘째와 셋째는 세상 모르고 재잘대고 있었고, 나와 아내 그리고 중3인 큰딸은 주변의 분위기에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때 심사부스에 앉아있는 입국심사관의 우렁찬 외침, “Passport!!!”
DPP는 Digital Product Passport의 약자로, 한글로는 ‘디지털 제품여권’이라는 뜻이다. 방금 든 생각인데 띄어쓰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겠다 싶다.
‘디지털 제품여권’
‘디지털제품 여권’
‘디지털 제품 여권’
첫 번째는 ‘제품여권’인데 디지털로 된 것.
두 번째는 ‘디지털제품’인데 여권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세 번째는 ‘디지털로 된 제품인데……….’ 무슨 얘긴지 알 수 없네.
하여간, 이제 모든 제조품이 다른 나라로 갈 때(수출될 때) 해당 제품의 여권을 제시해야 통관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람이 다른 나라에 입국하려면 종이로 된 여권을 반드시 제시해야만 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제품여권은 종이여권 형태가 아닌 디지털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 사진 1은 디지털 제품여권의 사진자료인데 요즘 우리가 여러 곳에서 자주 사용하는 QR코드가 ‘디지털 형태’로 만든 제품여권의 실체이다. 저 QR코드 링크로 들어가면 해당 제품의 모든 기록들이 담겨 있는 인터넷 화면이 연결되는 구조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상품들은 여러 가지 부품들이 모여서 하나의 상품이 되는데, 각각의 부품들도 DPP가 필요하고 완제품도 DPP가 제시되어야 한다. 자동차 생산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 각기 다른 제조업체에서 3만 개의 부품을 생산하여 H사에 납품하면 이것들을 조립하여 1대의 자동차를 만든다. 그 자동차를 유럽에 수출할 때 ‘디지털제품여권’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때 H사는 3만 개 부품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담은 하나의 QR코드를 제시해야 한다. 따라서 DPP의 도입은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업체들이 DPP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야 하며, 그러지 못할 때 대기업에서는 해당 완성품의 온전한 DPP를 제공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공동운명체이다. 중소기업의 DPP 대응이 대한민국 전 산업영역에서 아주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DPP에 담아야 하는 입력정보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입력정보 카테고리는 브랜드, 공급망, 제품 정보, 원자재 정보, 취급방법, 순환성, 지속가능성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위정보 기준으로 살펴보면 단품 단위 제품의 재료 원산지, 탄소발자국(Product Carbon Footprint, PCF), 재활용 원료 비율 등이다. (전편 ‘양의 탈을 쓴 이리 CBAM’에서는 CFP, Carbon Foot Print로 표기하였으나 같은 말이며, PCF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외에 입력해야 할 하위정보가 많이 있으나 위의 3가지가 어려운 영역이다.
그중에서도 탄소발자국이 가장 어렵고 복잡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나도 그렇다. 전편에서 탄소발자국에 대해 일부 다루었는데, 탄소량 측정을 위한 데이터는 ISO 14067에 따라 PCF를 측정하는 방식을 준용하면 되는 것인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생산량, 원재료, 가동시간, 전력사용량 등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은 스마트 팩토리 고도화 기업에서는 이미 이러한 데이터가 실시간 수집되고 있다는 것이다. 탄소량 측정 즉, PCF 결과값의 상당 부분은 지금이라도 대응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다만, 원재료의 화학 성분에 따른 탄소량 산출 등 전문영역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특정한 센서나 계산식을 더해서 스마트 팩토리를 구축한다면 충분히 대응이 가능한 것이다.
본편에서 약간 덧붙이자면, 제품의 전체 생명주기 동안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계산하고 관리하는 기법(생명주기평가, Life Cycle Assessment, LCA)으로 ISO 14067 표준에 기반하고 있으며, 분석은 지정된 제품 또는 서비스 단위, 물류배송까지 해당하는 총 온실가스 배출량을 CO₂ 환산값으로 표시한다.
이런 내용을 구현해 놓은 것이 독일 전기전자산업협회(ZVEI)의 탄소발자국 컨트롤 캐비닛(PCF@Control Cabinet)이다. 2022년 독일 하노버 산업박람회에서 쇼케이스 시연을 통해 전자제품 DPP의 구현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나도 현장에서 협회 관계자 및 독일 정부의 안내를 받아 설명을 듣기도 하였다. 탄소발자국 컨트롤 캐비닛이란 ZVEI가 지멘스, ABB 등 16개 회사에서 생산된 부품을 하나의 캐비닛에 사진 2와 같이 Embedded하여 넣어놓고, 캐비닛 문을 닫아 하나의 완성품 QR코드를 생성한다. 이를 스캔하면 제품의 기본 정보(제품명/제조업체, 일자, 국가 등)를 확인할 수 있으며 여기에 훨씬 더 복잡한 방식으로 제시해야 하는 다양한 국가 및 기업의 탄소발자국 정보 및 탄소 배출량을 계산하여 제품여권(DPP)에 반영하여 표시해준다.
디지털 배터리 여권(DBP, Digital Battery Passport)은 배터리의 전 생애주기 정보를(LCA) 디지털화해 QR코드로 소비자 및 이해관계자에게 공유하게 되는데, EU에 유통되는 LMT 배터리와 2kWh 이상의 모든 전기차, 산업용 배터리에 대해 배터리 여권을 제시해야 한다. EU의 배터리법 발효(23.8.17 발효) 후 42개월이 경과한 2027년 2월부터 시행된다. 다른 산업에 우선하여 DBP를 해보고 전 산업에 수평 전개하는 목적도 있다.
1. 공급망 ESG
ESG는 기업경영 활동으로 초래되는 인권 및 환경에 대한 실제적·잠재적 부정적 영향에 대해 기업 스스로 식별·예방·완화하고, 책임 있는 방식으로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기업의 체계적인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다. 2020년 4월 EU 집행위원회는 여기에 더해 ‘공급망 ESG 실사’ 지침을 발표하였다. ESG 관련 인권, 환경 등에 부정적 영향에 관한 조사를 기업 자체 사업에 한정하는 것이 아닌 제품 및 서비스 생산 과정에 관여하는 공급망 관련 전체 기업의 준수 의무를 조사하고 필요한 조치를 이행하는 것이다. 이미 BMW(독일)에서는 ESG 공급망 실사를 통해 미흡한 협력업체를 3년 평균 150개사를 공급망에서 배제시켰으며, GE(미국)는 2020년 기준 공급망 71개사를 퇴출시켰다.
그동안은 최종 수출기업만 ESG 리포트를 첨부하면 되었으나, ‘공급망 ESG’는 수출완제품에 포함되어 있는 공급망의 모든 부품사까지 포함하는 ESG 리포트를 첨부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단순히 ‘공급망’이라는 단어만 하나 더 붙었으나, 그 의미하는 바는 엄청난 난제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2. 핵심원자재법
핵심원자재법(CRMA, Critical Raw Materials Act)은 핵심 및 전략 원자재의 역내 생산 확대 및 역외 국가와 원자재 협력에 의한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중국 등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완화하기 위한 법안으로, 탄소중립 이슈를 기반으로 EU 권역 내 제조업 역량 강화 및 재활용 강화 달성이 주요 목적으로 추진된 법안이다.
3. 미국의 경우
미국의 경우도 EU와 유사한 탄소국경조정 부담금 등의 정책과 함께 환경기준 및 여러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만족하지 못한 제품에 대해 미국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공정전환 경쟁법(FAIR Transition and Competition Act), 청정경쟁법(CCA, Clean Competition Act),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 지속가능한 글로벌 철강 협정(GSSA, Global Sustainable Steel Agreement) 등이 있다.
4. 미국판 CBAM; 공정전환 경쟁법
공정전환 경쟁법은 미국 내 기후변화 법규를 준수하는 기업의 경쟁력을 보호하면서, 해외 오염 배출 국가의 적극적인 배출량 감축 노력을 유도하기 위한 법안이다. 먼저 EU 위원회에서 탄소국경조정세(CBAM) 예고에 따라 이와 유사한 개념의 제도 도입을 목적으로 발의되었으며, 여기서 도달되는 재원으로 대규모 기후변화 인프라 지출 계획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그 이면에는 해외 오염배출국가로 중국을 타겟팅하고 있어 그린정책이 그 이면에는 중국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마무리
전편에 적었던 마무리를 조금 수정하여 다시 적어본다. DPP는 CBAM보다 더욱 강력한 환경 규제일 것이다. DPP의 핵심 요소가 탄소발자국이며 이를 계산해서 제시해야 하는 당면 과제가 우리 중소기업에게 있다. 특히 배터리 산업에서 OEM 대기업에 부품과 원료를 공급하는 중소기업에게는 더욱 그렇다.
나는 DPP 및 CBAM과 같은 글로벌 환경 규제를 ‘스마트 팩토리 사업’의 확장 개념으로 대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스마트 팩토리 고도화 단계 중소기업은 CBAM, DPP를 대응하기 위한 제조 데이터 수집이 가능한 기업이다. EU에서는 원칙적으로 환경 대응을 하는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이 앞서 언급하였듯이 MRV(Monitoring, Reporting, Verification), 즉 모니터링 의무, 보고 의무, 검증 의무이다. 한마디로 디지털 대응 방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 팩토리 고도화 구축 기업은 모든 제조 데이터, 장비 및 주변 환경 데이터까지 생산에 관여되는 데이터가 저장되고 있다. 여기 저장된 제조 데이터를 활용하여 AI 알고리즘을 통해 장비의 예지보전 및 품질확인, 공정 간의 연결, 자율생산까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고도화 기업은 모든 제조 과정에서 발생되는 유의미한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현재 스마트 팩토리는 기초, 중간1, 중간2, 고도화 4단계로 구별하여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5단계로 ‘환경 대응 단계’를 추가하여 기존 4단계에서 5단계로 확대하면 정부 차원의 대응 준비는 완성된다. 이것은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동안 성공적으로 운영해온 스마트 제조 혁신의 경험치가 있기에 충분히 가능하게 하는 힘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