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sport!!” 2007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17년 전 나는 회사의 미국 주재원으로 선발되어 4년 반 정도를 미국 남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가족들과 같이 미국에 입국하는 터라 모든 과정을 내가 챙겨야 했기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자식이 3명이나 되니 말이다. 우리 가족 다섯 명이 하나의 입국심사대에 우르르 서 있었다. 아직 어린 둘째와 셋째는 세상 모르고 재잘대고 있었고, 나와 아내 그리고 중3인 큰딸은 주변의 분위기에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때 심사부스에 앉아있는 입국심사관의 우렁찬 외침, “Passport!!!” DPP는 Digital Product Passport의 약자로, 한글로는 ‘디지털 제품여권’이라는 뜻이다. 방금 든 생각인데 띄어쓰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겠다 싶다. ‘디지털 제품여권’ ‘디지털제품 여권’ ‘디지털 제품 여권’ 첫 번째는 ‘제품여권’인데 디지털로 된 것. 두 번째는 ‘디지털제품’인데 여권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세 번째는 ‘디지털로 된 제품인데……….’ 무슨 얘긴지 알 수 없네. 하여간, 이제 모든 제조품이 다른 나라로 갈 때(수출될 때) 해당 제품의 여권을 제시해야 통관이 가능하다는 것
어릴 적 TV가 잘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시골 우리 동네 반장님 댁에는 어린이 프로그램이 할 시간이면 동네 고만고만한 녀석들이 그 집 마당에 한가득 모여들었다. 마당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널찍한 미닫이 유리문을 열면 마루가 있고, 그 끝에 맞닿아 있는 안방 문까지 열어 놓으면 마당에서도 TV를 볼 수 있었다. ‘양의 탈을 쓴 이리’는 손에 땀을 쥐고 봤던 인형극이다. 토끼가 말한다. “양아, 너는 다른 양하고 약간 다른데 어느 나라에서 왔니?” 양이 말한다. “나는 저기 유럽에서 온 양인데, 내 이름은 이리라고 해.” 이리라고 불리는 양은 입에서 침이 흘러내리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자기를 소개하고 있다. “츄르릅!” 이리 양은 흐르는 침을 집어삼키면서 계속 이야기한다. “내가 아주 맛있는 풀이 있는 곳을 알고 있는데 같이 가볼래?” 이때쯤 마당에서 초조하게 보고 있던 아이들은 “안 돼! 가지 마! 양의 탈을 쓴 이리야! 그곳에 가면 이리가 너를 잡아먹는단 말이야!”라고 외친다. 이 동화의 끝이 어떻게 되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양의 탈을 쓴 이리’는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탄소중립’에 대한 글로벌 이슈가 커지고 있다. 지구를 살리기 위
제조 데이터의 상호운용성이라는 말이 요즘 데이터 전문가들 사이에서 화두가 되고 있다. 업종별 다양한 기업들 간에 생산 데이터를 서로 공유하게 됨으로써 원가 절감, 유연 생산, 글로벌 규제 대응이라는 효과를 보게 되는데, 이를 디지털 전환을 통해 상호 간에 제조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전략이다. 독일은 일찌감치 Industry 4.0을 선포하고 그 하위 기관인 Platform Industry 4.0을 설립하여 실행을 총괄하게 했다. 이 기관의 핵심 사업은 GAIA-X라는 위원회를 운영하는 것인데, 이 위원회는 산업군별로 다양한 데이터 상호운용(Interoperability) 전략 그룹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산업 분야 전략 그룹으로 CATENA-X가 있다. 벤츠, BMW, 보쉬, ZF, SAP, 지멘스 등 굴지의 기업들이 이곳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범 유럽 업체 및 미국, 아시아의 다양한 업체들과 이들의 하위 1차, 2차 협력 업체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목적하는 바는 이 그룹에 들어와 있는 기업들 간 제조 데이터의 상호운용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회원사의 공개 데이터만 보고도 같이 협력할 수 있는지 알 수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벤저민 프랭클린이 한 말이 있다. ‘인생에서 확실한 것은 두 가지가 있는데 죽음과 세금이 그것이다.’ 죽음은 이해가 되지만 거기에 세금을 붙이는 솜씨는 천상 사업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듯하다.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스마트 제조 혁신’이다. 그 확실한 것을 위해 지금 나는 여기 세종에 와 있다. 기업의 성장은 늘 있어야만 한다. 기업은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속성은 성장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성장하지 않는 생명은 이미 없는 것이다. 그것은 죽음인 것이다. 기업의 성장을, 생명의 연속성을 기대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지점에 스마트 팩토리가 있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어떤 사물을 정의할 때 일반적으로 두 가지 관점으로 바라본다. 하나는 속성(물성)이 무엇이냐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목적성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장작의 속성은 나무이고 - 더 깊이 들어가면 화학적인 내용이 나오겠지만 - 목적은 불멍이다 - 이것도 마찬가지로 더 깊이 들어가면 불 때는 목적이긴 하지만. AI도 같은 시각으로 표현해보면 속성은 데이터이고 목적은 알고리즘이다. 서론에서 다루었지만, 제조업의 생산성 향상, 품질 확보
지난 2월, 나는 여느 때처럼 아침나절에 탄천변을 걷기 위해 나왔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새벽을 뚫고 걷고 있었다. 한참을 걸었을 때, 낯선 기분이 들며 어디선가 상냥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주인님! 오늘은 2월 20일 월요일입니다.” “날씨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영하 3도까지 내려가는 추운 하루가 될 것입니다.” 깜짝 놀라 사방을 둘러봐도 이런 말을 할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주인님. 오늘은 2월 20일 월요일입니다. 날씨는….’ 그 순간 웃음이 나왔다. 매일 5시에 맞춰놓은 핸드폰 알람이 이제야 울린 것이었다. 어제 핸드폰에 AI 알람 기능을 신문에서 보고 설정해 놓았던 것이 떠올랐다. 설정할 때 여러 번 들어본 소리였지만, 실제로 알람이 울릴 때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몰라 웃음이 나왔다. 주머니 속 핸드폰에서 나는 알람 소리가 두꺼운 겨울바지를 뚫고 들려오니 소리가 변형되어 들렸던 것이다. 어제 들었던 익숙한 그 소리를 다시 들어본다. 무한 반복으로 똑같은 내용이 들려온다. “영하 3도…. 오늘 약속 장소인 세종시는 현재 영하 2도로 이곳보다 조금 덜 춥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