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의 그림자에 가려진 것처럼 보였던 대만 하드웨어(Hardware) 산업이 새로운 모습으로의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과거 저가 대량 생산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고품질’과 ‘전문성’이라는 무기를 장착한 채 틈새시장(Niche Market) 공략이라는 생존 전략에 나선 것이다.
특히 전체 수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미국 시장의 관세 압박과 중국의 핵심 자재 통제라는 이중고 속에서, 대만 하드웨어 제조사들은 유럽과 아시아로의 시장 다변화를 모색하며 생존을 넘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 산업적 전환기를 이끌고 있는 대만 하드웨어 생태계 및 업계는 대만 산업의 미래가 ‘가치’에 달려있음을 역설한다. 그 중심에서 ‘규모의 경제’를 넘어 ‘가치의 경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하며, 대만 하드웨어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臺 하드웨어 전시 플랫폼의 진화 선언 “B2B 바이어 공략 전면화”
이러한 ‘가치’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을 실현하기 위해, 대만 하드웨어 산업은 먼저 플랫폼 자체의 체질 개선을 시도했다. 그 선봉에는 기업 간 거래(B2B) 하드웨어 전문 전시회 ‘대만 국제 하드웨어 박람회(Taiwan Hardware Show 이하 THS)’가 있다.
THS는 지난 2020년 말부터 ‘대만 산업 주간(Taiwan Industry Week 이하 TIW)’의 산하로 들어가며 전시회 자체의 체질을 완전히 개선했다. 이는 하드웨어 외에도 산업 기계를 담당하는 ‘IEMT’, 안전 부문 ‘TSA’, 냉난방 공조 콘셉트의 ‘RHVAC’ 등 네 가지 주요 산업을 한 지붕 아래 모아 시너지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적 결정이었다.
해당 통합 전시 플랫폼을 주관하는 카이고(KAIGO)의 알렉산더 카임(Alexander Keim) 전무는 “바이어들이 대만 방문 시 단일 품목이 아닌 여러 관련 제품을 함께 조달하려는 복합적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러한 통합 포맷을 도입했다”며 이로써 네 개 산업이 서로 협력해 진정한 산업 생태계를 이루도록 돕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고 설명했다.
카이고는 전시회 성공을 평가하는 핵심 지표로 B2B 매칭 성과와 사전 등록 방문객 수를 꼽는다. 특히 국제 바이어와 현지 대만 기업을 연결하는 매칭 성과에 주력하고 있다. 더불어 사전 등록 방문객 수가 현장 방문객 수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라고 밝혔다.
특히 최근 행사에서는 사전 등록 방문객 수가 지난 행사 대비 두 배 증가하는 성과를 보였는데, 이는 잠재 바이어를 대만으로 집중 유치하려는 카이고의 전략이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이러한 가시적인 성과는 현재 대만 하드웨어 산업이 직면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카이고의 최우선 목표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대만 일반 기계 및 하드웨어 산업은 반도체 산업의 그늘에서 이전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해 카임 전무는 “개별 업체가 홀로 하기 어려운 바이어 유치 활동을 전시 플랫폼을 통해 지원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 TIW는 하드웨어 산업 전반의 가치 사슬을 통합적으로 보여주며 바이어들에게 원스톱(One-stop) 소싱 기회를 제공하는 데 방점을 찍는다.
‘핀셋 전략’으로 돌아선 대만 하드웨어 업계의 시선
대만 하드웨어 업계는 현재 프리미엄화와 스마트 제조로의 급격한 전환기에 놓여 있다. 이 과정에서 무선 및 배터리 전동 공구와 같은 대량 소비재 시장의 주도권을 중국에 상당 부분 내줬다. 하지만 이를 경쟁력 상실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고품질과 전문성을 무기로 삼아, 틈새시장 공략에 집중하는 전략적 전환의 계기로 삼았다.
이러한 ‘선택과 집중’ 승부수는 고품질(High Quality)과 전문적인 툴(Professional Tools)에 초점을 맞춘 전략이다. 올해 THS는 ‘혁신 하드웨어 섹션(Innovative Hardware Section)’을 통해 이러한 최신 기술과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선보였다.
이러한 전략적 전환은 자동차 수리, 조선, 건설 산업, 정밀 제조 등 분야에서 요구되는 특수하고 정밀한 도구들로 집중된다. 대만 제조업체들은 이제 대량 주문을 확보하기보다, 300~500개 수준의 소량 주문에 집중하면서도 품질을 높여, 더 높은 가격에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수익 모델을 전환하고 있다.
카임 전무는 대만 하드웨어가 기존 ‘양적 성장’ 대신 ‘고부가가치 창출’을 선택했음을 강조하며, 이러한 변화가 하드웨어 제조사들로부터 직접 듣고 배우는 현재 시장의 트렌드임을 명확히 했다.
또한 대만 하드웨어 수출의 약 50%가 미국 시장으로 향했던 만큼, 미·중 무역 갈등으로 인한 관세 장벽은 대만 산업에 큰 압박으로 작용했다. 카이고는 이에 대한 생존 해법으로 미국 외에 유럽 시장과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시장 다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기에 일부 신흥 개발도상국 시장의 중요성 또한 점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시회 개최지에 대한 결정도 이와 맞물린다. 그동안 정밀 제조 클러스터의 중심인 타이중(Taichung)에서 열렸던 이점을 내년부터 대만 수도 타이베이(Taipei)로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전시회의 국제 표준을 강화하고 바이어 접근성을 높여 글로벌 비즈니스의 중심지로서의 입지를 다지려는 전략적 판단이다. 이 같은 타이베이 복귀는 THS가 진정한 글로벌 무대로 도약하기 위한 필수 과정으로 풀이된다.
‘메이드 인 타이완’ 강조하는 독자 공급망이 新 무기
THS는 세계적인 하드웨어 전시회들과의 차별점을 명확히 구축하고 있다. 독일 쾰른 메가 쇼(Mega Show)와 비교했을 때, THS는 ‘메이드 인 타이완’ 제품에 절대적으로 초점을 맞춘다.
카임 전무는 “바이어들은 THS를 통해 대만 기업들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공장 방문까지 할 수 있다는 고유한 이점을 얻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대만이 짧은 휴가를 겸할 수 있는 좋은 여행지라는 점과 맞물려 매력도를 높일 것이라는 판단에 의한 결정이다.
한편 중국의 캔톤 페어(Canton Fair)가 다양한 소매 제품을 대량으로 소싱하는 곳이라면, THS는 고품질 제품을 찾는 전문 바이어를 위한 플랫폼이다. 최근 소매점들이 저가 제품 외에도 고품질 라인을 병행하려는 추세에 따라, THS는 캔톤 페어 직후에 일정을 잡아 국제 방문객들이 두 행사를 연이어 방문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참관객이 ‘대량’과 ‘고품질’ 소싱이라는 요구를 모두 맞추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대만은 섬나라라는 지리적 여건 덕분에 제조 공급망이 매우 효율적이다. 철강·고무 등 원자재를 대만 현지 업체들로부터 전시(Just-in-Time)에 조달 받을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대만 안에서의 운송 시간이 한 시간 이내로 짧아, 제조업체 간 편의성이 높다는 것도 대만 하드웨어의 품질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동력이다. 이러한 공급망의 유연성과 효율성은 대만 하드웨어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숨겨진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THS, 대만 하드웨어의 판도를 읽다...고부가가치 전환의 실행 계획
앞서 ‘품질 중심의 가치 경제’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이 강조됐다. 이를 위해 단행한 구조적 전략과 전시 플랫폼의 진화를 살펴봤다. 그 전략의 중심에 있는 알렉산더 카임 전무는 다양한 글로벌 이슈 안에서 대만 하드웨어가 실제로 어떤 고부가가치 제품과 혁신으로 여러 시장을 공략할 것인지 구체화했다. 다음은 알렉산더 카임 전무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Q. 대만의 ‘고품질 전문 툴’ 틈새시장을 주도하는 구체적인 혁신 사례나 제품군은?
A. 우리는 정밀 의료 기기용 툴(Tool for Precision Medical Devices), 항공우주 산업용 특수 공구 등 고부가가치 전문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 이같이 대만은 복잡한 구조의 작은 부품을 정밀하게 가공하는 기술이 뛰어나다. 이것이 우리가 집중하는 ‘혁신 하드웨어 섹션’의 핵심이다.
Q. 내년부터 타이베이로 이전할 경우, 타이중의 제조 클러스터에서 얻었던 현장 공장 방문 이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지. 이에 대한 대안은?
A. 타이중은 그동안 글로벌 제조사들에게 바이어를 직접 공장으로 안내하는 중요한 이점을 제공했다. 타이베이로 이전하더라도 이 장점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 우리는 사전 주선된 공장 방문 프로그램을 더욱 체계화하고, 타이중 지역 주요 업체들과의 연계를 강화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바이어들이 효율적으로 각사 현장에 방문하도록 다각적으로 지원할 것이다.
Q. 중국의 핵심 자재 수출 통제나 관세 압박이 대만 하드웨어 제조사들의 운영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A. 가장 큰 영향은 공급망의 불확실성 증가다. 특히 특정 금속이나 화학 자재의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대만 업체들은 국내 공급망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국내 현지 업체로부터 바로 각종 재료를 소싱하는 독자적인 공급망이 더욱 중요해진 이유다.
Q. 반도체 산업의 호황 속에서 하드웨어 산업이 언제쯤 이전의 성공을 되찾을 것으로 예상하는지. 이에 대한 전망은?
A. 우리는 기계 부문 전반의 스트레스 회복이 내년 혹은 2027년에 이루어질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다. 지금은 시장이 회복기에 접어들기 위한 바닥 다지기 단계로 분석된다. 우리의 목표는 이 회복기에 맞춰, 많은 국제 바이어를 확보해 대만 생태계가 이 기회를 선점하도록 돕는 것이다.
Q. 전시회 성공을 평가하는 내부 기준을 어떻게 다변화했나? 단순히 숫자 외에 중요한 지표가 있다면?
A. 전시회를 다년간 개최하면서 부스 수나 방문객 수만 집중한다면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이러한 관점을 기반으로, 참가 업체들이 실제로 새로운 파트너를 확보하고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전에는 양적 성장에 집중했지만, 지금은 고가치 바이어 유치와 그들 간의 실질적인 계약 성사율을 가장 중요한 내부 성공 지표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의견에서 봤듯 이들은 대량 생산 시대의 종언을 인정하고, 고부가가치 틈새시장 공략과 플랫폼 혁신을 통해 난관을 정면 돌파하려 한다. ‘물량 중심을 넘어 품질 중심으로’라는 패러다임 전환은 다양한 글로벌 환경 내 변수 속에서 대만 산업이 선택한 가장 현실적이고도 공격적인 생존 공식이다.
오토메이션월드 최재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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