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물류 산업이 디지털 전환과 AI, 플랫폼 경제의 물결 속에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박민영 인하대학교 교수는 물류가 단순 운송을 넘어 첨단 산업으로 변모하고 있으며, 유통·제조·정보 산업과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 블러(Big Blur)’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국내 물류 시장이 GDP의 8%를 차지하는 거대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기술 수요 측면에서는 여전히 도입에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도시 물류 수요 증가, AI 기반 자동화, 친환경 규제 강화 등은 물류 기업에게 도전이자 기회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AI와 플랫폼이 뒤흔드는 변화의 파고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업들의 혁신 전략, 글로벌 시장 확장, 정부 정책과 규제 대응까지 총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한다.

변화의 속도와 물류의 새로운 국면
오늘날 사회 전반의 변화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전개되고 있다. 불과 10년, 때로는 5년 사이에 기존 질서가 송두리째 바뀌며 새로운 패러다임이 정착한다. 음악 산업만 봐도, 불과 한 세대 전에는 LP, 카세트테이프, CD 같은 매체와 플레이어를 통해 음악을 소비했다. 그러나 이제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음악 소비의 기본 모델이 되었고, 음반 제작사와 재생기기 업체는 몰락하거나 구조 전환을 피할 수 없었다.
유통업도 마찬가지다. 일본 도쿄의 대형 백화점 몰락, 미국의 오프라인 유통사 파산 사례는 상징적 장면으로 기록된다. 국내에서도 불과 10년 남짓한 업력을 가진 이커머스 플랫폼이 시장을 장악하며 소매 거래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단순히 소비 패턴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교통·법률·부동산 업계까지 플랫폼 기반의 서비스가 기존 플레이어와 충돌을 일으키며 사회적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작동한다. 특히 물류 산업은 이 변화의 한가운데 있다. 자율주행 기술이 미국·중국에서는 상용화 단계에 진입한 반면, 한국은 아직 제도적 장벽으로 시범 사업에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류 현장에서는 무인자동화, AI 기반 운영 시스템이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 이는 물류가 단순한 ‘운송업’이 아니라 ‘첨단 산업’으로 격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AI와 플랫폼이 만드는 물류 혁신
물류 산업은 지금 ‘스마트 물류’에서 ‘플랫폼 물류’, 그리고 ‘AI 물류’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다. CJ대한통운이 2015년 제시한 ‘빅 블러(Big Blur)’ 개념은 산업 경계의 붕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유통과 물류, 제조와 정보산업의 구분은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
아마존은 흔히 유통 플랫폼으로 인식되지만 실제 영업이익 절반은 클라우드에서 발생하고, 물류에서 25%의 수익을 낸다. 이는 아마존이 단순 유통회사가 아니라 IT ·물류·서비스가 융합된 복합 기업임을 시사한다.
국내 물류 기업들도 AI와 자동화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나, 여전히 ‘수요 기업’의 도입 속도는 더디다. 기술 공급자는 빠르게 움직이지만, 실제 운영 주체들은 비용과 불확실성을 이유로 보수적 태도를 유지한다. 하지만 AI 기반 자동화는 이미 물류센터 현장에서 성과를 입증하고 있다. 입·출고 과정, 피킹, 패킹 등 풀필먼트 전 과정에서 로봇과 알고리즘이 투입되며, 배송 속도와 정확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결국 기업의 경쟁력은 단순한 배송 효율이 아니라, AI와 플랫폼 기반 생태계에 얼마나 빨리 적응하고 선제적으로 진입하느냐에 달려 있다. 인하대학교 물류전문대학원 박민영 교수는 “AI와 플랫폼 경제는 물류업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한 변곡점”이라며, 혁신의 속도전에 뒤처지지 말 것을 당부했다.

국내 물류 시장의 성장과 한계
한국의 물류 시장은 규모 면에서 이미 거대한 산업군으로 성장했다. 산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물류산업 규모는 155조 원에 달하며, GD P의 약 8%를 차지한다. 이는 자동차, 반도체와 더불어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축임을 의미한다. 온라인 쇼핑, 1인 가구 증가, 비대면 거래 같은 사회적 요인이 급격히 작용하며, 새벽배송·당일배송·시간 지정 배송 등 세분화된 서비스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구조적 문제도 뚜렷하다. 수도권 집중 현상이 대표적이다. 한진의 물동량 분석에 따르면 수도권 집하 물량은 전체의 74%, 배송 물량은 53%를 차지한다. 이는 지방 대비 13배에 달하는 물류 밀도를 의미한다. 이런 상황은 도시 물류 인프라의 과부하, 교통 혼잡, 환경 문제를 동반한다.
동시에 코로나19 이후 금리 상승으로 물류 시설 투자가 급격히 위축되며, 보관 시설 공급 부족이 현실화됐다. 그 결과 보관료와 물류비 상승이라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박 교수는 “물류 인프라는 최소 5년 이상의 장기 계획을 필요로 한다”며, 정부의 공공 부지 활용 정책과 민간의 전략적 투자 확대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공급난이 지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시장의 성장세와 달리 인프라 불균형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K-물류, 두 번째 반도체가 될 수 있을까
세계 시장에서 한국 물류의 입지는 아직 작다. 2024년 기준 글로벌 물류 시장 규모는 약 9조 달러, 한국의 시장 점유율은 1.3%에 불과하다. 그러나 박 교수는 “국내 물류기업들의 경쟁력은 글로벌 대기업에 뒤지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해외 출장 경험을 통해 확인한 결과, 한국 기업은 디지털 기술, 운영 효율성, 서비스 품질 측면에서 충분한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AI와 디지털 전환 기술이 결합된다면, K-물류가 새로운 글로벌 성장동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특히 부산 신항 등 주요 항만은 단순 물류 기능을 넘어 제조·유통까지 포괄하는 복합 단지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물류 기업이 글로벌 네트워크 속에서 B2B 고객 중심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한다. 정부 역시 ‘모빌리티 혁신 로드맵’을 통해 자율주행, 디지털 물류 전략을 구체화하며 산업 생태계를 지원하고 있다.
글로벌 물류 시장은 2030년까지 두 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이 이 기회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기술 내재화뿐 아니라 해외 항만·공항 네트워크 확장, 현지 맞춤형 서비스 도입이 필수적이다. 즉, K-물류는 내수 한계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두 번째 반도체’가 될 잠재력이 크다.

패키징부터 AIoT까지…물류 혁신의 답은 현장에 있다
박 교수는 “혁신은 문제 인식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하며, 고객 불만과 비효율적 요소를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현장에서는 다양한 혁신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도시 물류 문제 해결을 위해 인천에서 실증된 V2V(Vehicle-to-Vehicle) 방식은 대표적이다. 이는 차량 간 물품 릴레이를 통해 도심 내 대형 물류센터 부족 문제를 해소하고, 당일 배송을 가능케 한다.
상하역 자동화도 주요 과제다. 택배 기사들이 겪는 근골격계 질환을 줄이기 위해 컨베이어 장비를 도입한 결과, 노동시간이 1시간 이상 단축되고 심박수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AIoT 디바이스 기반 모니터링은 의약품·신선식품 유통에서 실시간 온·습도 데이터를 확보해 정부규제에 대응하고 품질 관리 효율성을 높였다.
패키징 혁신도 주목할 만하다. 단순한 디자인 개선만으로도 팔레트 적재량을 2.5배까지 늘릴 수 있으며, 친환경 소재 도입은 규제 대응과 비용 절감을 동시에 실현한다. 인천시 디지털 물류 서비스 실증 사업은 소상공인 매출을 평균 17%나 끌어올리며 물류 혁신이 단순 효율 개선을 넘어 새로운 성장 플랫폼임을 입증했다. 결국 물류 혁신은 공동화, 정보화, 표준화를 기반으로 하되, ‘수요 기반 개발(DDD)’ 원칙에 따라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결론과 향후 전망
물류는 이제 첨단 산업으로 재편되며, 안전·환경·보안이라는 새로운 규범에 직면하고 있다. 온열 질환 대응, 의약품 온·습도 관리, 탄소 발자국 인증 등 글로벌 규제가 강화되면서, 물류 기업은 기술과 제도를 융합한 대응이 필수적이다. 박 교수는 “디맨드 드리븐 디벨롭먼트(수요 기반 개발)”을 강조하며, 기술 공급자가 아닌 실제 수요 기업의 요구를 반영한 혁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30년 후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기술이 일상이 될 것”이라며, 지금이야말로 기업과 정부, 학계가 함께 미래 물류 생태계를 설계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오토메이션월드 임근난 기자 |
* 이 글은 9월 10일 열린 SCM SUMMIT 2025에서 인하대학교 박민영 교수가 발표한 ‘변화, 혁신 그리고 물류’ 강연 내용을 재구성하여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