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일상화’가 체감되는 시점이다. 기존 주요 무대인 공장 등 산업현장에서 식당·공항·역사·쇼핑몰·경기장 등 다중이용시설로 로봇의 영역이 확대됨에 따라 ‘로봇 시대’가 열린 모양새다. 로봇은 색다른 테마와 유연·다양한 설계로 더욱 폭넓은 분야에서의 활약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8년 정부가 제정한 ‘지능형 로봇 개발 및 보급 촉진법(지능형 로봇법)’을 시작으로 국내 로봇 산업의 르네상스를 열었다. 지난해 11월에는 산업현장뿐만 아니라 인도·도로 등 생활 영역에서 로봇의 이동을 담은 지능형 로봇법 개정안이 시행돼 본격적인 인간과 로봇의 공존이 시작됐다.
이렇게 기술적·활용성 측면에서 높은 잠재력을 갖춘 로봇을 생활상에 녹이기 위해 각종 분야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어디까지 도달했을까?
차세대 기술 도입의 선도 분야 ‘방위’...군인·군장비 대체를 넘어 ‘자율화’ 수준으로의 군사 로봇 고도화 시동
방위산업은 ‘첨단 기술의 요람’이라고 평가될 만큼 수많은 차세대 기술이 선제적으로 도입되는 분야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 각국이 자국의 국방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쟁하는 치열한 분야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기술을 시험하는 기술 데모의 장으로도 불린다. 국방은 자국 보호의 목적도 있지만, 세계 평화를 수호하는 데도 직접적으로 관여해 각국의 협력 분야이기도 하다.
지금 시대에서 무인비행체(드론)는 방위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기술로 자리잡았다. 최초의 군사용 드론은 물리학자 겸 전기공학자 니콜라 테슬라에 의해 개발됐다. 폭탄 충돌 드론 ‘케터링 버그(Kettering Bug)’는 레이터와 무선 통신을 기반으로 한 복엽기다. 영국이 1차 세계대전 중 케터링 버그를 응용해 독일군 진영을 항공 촬영한 기록이 있다.
이어 1995년 첫 실전에 투입된 미국의 ‘RQ-1 프레데터’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보스니아·코소보·예멘 등 전쟁·분쟁지역에서 미사일 공격, 정찰 등 임무를 원격으로 수행해 원거리 제어 군사 드론 시대를 열기도 했다. 오사마 빈라덴 암살 작전에 투입된 일화는 유명하다. 2022년 촉발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인류 최초의 드론 전쟁으로 불리며 전 세계 군사용 드론 기술이 총망라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00년 국방과학연구소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협력해 국내 최초의 무인정찰기 ‘RQ-101 송골매’ 개발에 성공하며 글로벌 군사용 드론 시장에 진입했다. 이후 2010년대 들어 군사용 드론 업체가 연이어 등장하며 군사용 드론 산업에 출사표를 던졌다.
2016년 설립된 드론 제조업체 ‘보라스카이’는 2021년에 국사용 드론 분야에 노크했다. 근거리 정찰 드론 ‘엑스 메이즈(X-Maze)’, 수송 드론 ‘엑스 캐리어 시리즈(X-Carrier Series)’, 장거리 정찰 드론 ‘엑스 크로스(X-Cross)’, 수면 이착륙 드론 ‘엑스 플로우(X-Flow)’ 등 다양한 드론 기체를 보유했다.
여기에 엑스 플로우를 개선한 3세대 기체 ‘엑스 스톰(X-Storm)’, 기지 보안 및 경계 순찰 드론 ‘엑스 패트롤러 II(X-Patroller II)’, 고고도 비행 기반 수직 공격 드론 ‘엑스 블라스트(X-Blast)’ 등 차별화된 모델로 시장을 매료시키는 중이다.
이 업체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모션제어, 설계 등 드론 전주기에 이르는 역량을 보유해 주목받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방위사업청의 근거리정찰드론 사업 참여 기업으로 합동참모본부로부터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은 바 있다. 보라스카이의 드론은 내년까지 군에 도입돼 활약할 전망이다.
PAV(Personal Air Vehicle) 기술 업체 ‘숨비’도 군수송 및 미사일 탑재 드론 ‘카브(CAV)’를 공개했다. 카브는 최대 100kg의 화물을 60분 동안 120km/h 속도로 수송 가능한 기체다. 여기에 미사일 탑재도 가능해 방위 및 공격 임무도 담당한다.
숨비는 이 같은 드론 기체와 더불어 관제 시스템도 두루 갖춘 드론 분야 토털 솔루션 업체로 성장했다. 지상 관제 시스템 ‘SVGCS-1’은 군 지정 주파수 기반 휴대용 터치스크린 기기로, 5~10km의 통신거리를 자랑한다. 군사지도 탑재도 가능해 군에 특화된 관제 솔루션이다. 드론 자가진단부터 비행경로 및 자동 착륙 설정이 가능하다.
숨비는 비행제어시스템, 하이브리드 추진동력 시스템 등을 앞세워 지난달 한국거래소가 지정한 평가기관에서 진행한 기술평가에서 A 등급을 받았다. 이를 토대로 코스닥 기술특례상장 요건을 확보해 내년 코스닥에 입성할 계획이다.
끝으로 드론 솔루션 업체 '니어스랩'은 인공지능(AI) 기반 소형 자율비행 드론 ‘에이든(AiDEN)’을 필두로 드론 시장에 데뷔했다. 에이든은 풍력발전기, 댐, 교량, 컨테이너선 등을 대상으로 안전점검을 수행하는 기체로, 니어스랩은 이러한 안전점검 분야로부터 드론 사업을 시작했다.
'니어스랩은 지난 4월 미국에서 개막한 글로벌 드론 박람회 ‘AUVSI XPONENTIAL 2024’에서 에이든을 응용한 직충돌형 고속비행 드론 ‘카이든(KAiDEN)’을 공개했다. 카이든은 적대적·불법 드론을 최대 250km/h 속도로 요격하는 ‘안티 드론’이다. 비전 AI 기반 레이더·센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표적을 탐지·식별해 직접 타격한다.
지난달 실시한 충돌 시험에서 60km/h 속도로 비행하는 고정익 드론을 요격해 실전 투입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카이든은 현역 방공 시스템과 연동 가능하다. 이를 통해 표적 드론의 움직임을 미리 분석한 후 선제 요격 가능하다. 사전에 요격 가능 구역을 설정해 출격하기 때문에 충돌 후 잔여물의 의한 지상 피해도 최소화한다.
니어스랩은 올해 다보스포럼(WEF)에서 발표한 세계 100대 스타트업 ‘테크놀로지 파이오니어(Technology Pioneer)’에 국내 드론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돼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니어스랩 관계자는 “올해 말 출시를 앞두고 있는 카이든은 비교적 단순한 구조로 설계돼 저비용으로 활용 가능하며, 대량 생산도 용이하다”며 카이든의 데뷔를 예고했다.
군사용 로봇은 드론뿐만 아니라 ‘다족보행 로봇’ 혹은 ‘로봇 개’라고 불리는 기체도 각광받고 있다. 다족보행 로봇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에서 정찰·지뢰탐지·군용품 운송 등 임무를 수행하며 본격적으로 군사 작전에 투입돼 활약 중이다.
국내에서는 로봇 제조업체 ‘케이알엠’이 대한민국 공군에 로봇 군견을 공급하기로 했고, 향후 각종 국방기관과 협력을 이어갈 전망이다. 로봇 플랫폼 업체 ‘레인보우로보틱스’와 방산업체 ‘현대로템’ 그리고 ‘국방신속획득기술연구원’이 협력해 개발한 대테러작전 다족보행 로봇은 이달 대한민국 육군에 납품을 시작했다. 해당 로봇은 대테러 진압, 감시, 정찰 등 실전 임무를 부여받을 예정이다.
또 다른 방산업체 ‘LIG넥스원’은 지난달 미국 다족보행 로봇 업체 ‘고스트로보틱스’의 지분 60%를 확보해 본격적으로 시장에 출전했다. LIG넥스원은 이를 기반으로 연내 미국에 협업센터를 구축해 글로벌 군사 로봇시장에 본격 진출할 방침이다.
스포츠는 인간의 전유물?...로봇도 함께한다
스포츠는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혜일까? 최근 로봇과 인간이 스포츠로 대결하는 콘텐트가 연출되거나, 인간의 스포츠 능력 향상을 위해 로봇이 활용되는 등 스포츠 관련 로봇이 보이고 있다. 스포츠 로봇은 지난 2011년 개봉한 파이터 로봇 영화 ‘리얼 스틸(Real Steel)’을 통해 영화화됐다.
해당 영화는 전직 프로 복서가 파이터 로봇을 제작해 자신이 이루지 못한 복싱 타이틀에 대한 갈망을 해소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현실에서는 영국 방송 매체가 1990년대 후반 방영한 로봇 배틀 프로그램 ‘로봇 워(Robot War)’, 여기에 파생된 미국 프로그램 ‘배틀봇(Battlebots)’ 등이 로봇과 스포츠가 융합된 사례다.
두 프로그램은 참가자가 직접 제작한 로봇이 링에서 결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바퀴 및 무한궤도를 이동수단으로 하는 로봇에 각종 무기를 탑재해 상대 로봇을 무력화시키면 이기는 대회다. 이처럼 인간과 로봇이 연계한 스포츠 테마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2023년에는 휴머노이드 로봇 ‘CUE6’가 NBA 슈팅 코치로 활약 중인 크리스 매튜스(Chris Matthews)와 슈팅 대결을 펼치거나, 최근 레알 마드리드 CF로 이적한 축구 슈퍼스타 킬리안 음바페(Kylian Mbappe)가 가상의 휴머노이드 로봇과 함께 훈련하는 영상 콘텐츠가 등장하는 등 스포츠 로봇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양상이다.
이 흐름에서 국내 시장도 스포츠 로봇을 상용화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웨어러블 로봇 솔루션 업체 ‘위로보틱스’는 보행용 웨어러블 로봇 ‘윔(WIM)’을 지난 4월 출시했다. 입는 로봇인 이 모델은 양 다리와 허리에 로봇을 착용하고, 싱글 액추에이터를 기반으로 사용자의 보행을 보조하는 제품이다.
AI 알고리즘이 탑재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보행 관련 데이터가 표시되고, 보조·휴식·운동 등 세 가지 모드를 상황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특히 운동 모드는 1~3단계로 보조 수준이 세분화돼 사용자의 조깅, 등산, 레저 등 활동을 돕는다.
맞춤형 로봇 슈트 업체 ‘휴로틱스’도 재활을 목적으로 한 웨어러블 일상형 보행 로봇 ‘H-Flex’를 보유했다. 이 밖에 재활 시설을 위한 상하의 웨어러블 로봇 ‘H-Medi’, 트레이닝 보조 웨어러블 로봇 ‘H-Fit’, 골프 스윙 트레이닝용 웨어러블 로봇 ‘H-Swing’ 등도 휴로틱스의 대표 로봇 기술이다.
이 중 H-Fit과 H-Swing은 사용자의 운동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 설계됐다. H-Fit은 엘리트 선수용 라인업으로, 머슬 메모리 트레이닝과 AI 기반 실시간 러닝 패턴 분석 및 보조 기능을 차용해 훈련 효과를 극대화한다. H-Swing은 극소형 모터와 AI 센서를 탑재한 웨어러블 로봇이다.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스윙 분석이 가능하고, AI 자세 분석 이후 로봇에 탑재된 밴드가 사용자의 스윙 자세를 교정해준다.
휴로틱스는 자체 기술력을 바탕으로 지난 1월 미국에서 개막한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4)에서 혁신상의 주인공이 됐다. 이어 이달에는 프리 시리즈 A 라운드를 통해 35억 원의 투자금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스포츠용 웨어러블 로봇 라인업의 상용화에 나선다.
'큐링이노스'는 테니스 테크 업체다. 테니스 무인화 인프라 ‘아이볼브(iVOLVE)’가 큐링이노스의 대표 솔루션이다. 지난해 CES 2023에서 AI 기반 테니스 트레이닝 로봇 ‘아이볼브 트레이너’를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아이볼브 트레이너는 사용자의 움직임을 데이터화해 운동 패턴 및 장단점을 분석한다. 이를 기반으로 훈련 및 경쟁 프로그램, 코칭 서비스 등을 자율주행 움직임을 구현한다. 지난 2021년에는 테니스 볼 머신 ‘아이볼브 스탠다드(iVOLVE Standard)’를 출시해 자동화된 테니스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권예찬 큐링이노스 대표는 “아이볼브는 현재 전 세계 테니스 업계 인건비 이슈에 대응 가능한 솔루션”이라며 “혼자서도 훈련 가능하지만, AI 분석 기능을 기반으로 메인 코치와 함께 훈련해 실력 향상을 노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초보·고수 막론한 운전자의 ‘숙원 이슈’ 주차, 드라이빙 드림 실현되나
차량 주차는 운전 초보 입장에서 까다로운 드라이빙 경험 중 하나다. 운전 고수라고 하더라도 주차 공간이 부족해 주차를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에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는 지난 2022년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규제 특례)를 통해 ‘기계식주차장치의 안전기준 및 검사기준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에는 주차로봇의 정의, 주차로봇 운영에 필요한 안전·검사기준 등이 규정됐다.
이때 핵심은 ‘자율주행 주차 로봇 서비스’다. 이 서비스는 이용자가 주차 입고 구역에 차량을 두면 주차 로봇이 차량을 든 후 주차장 바닥의 QR코드를 인식해 경로를 따라 빈 주차구획으로 이동·주차하는 방식이다. 자율주행 주차 로봇은 건물 구조를 변경하거나, 별도의 장비가 필요 없는 주차 인프라다. 이는 주차에 애를 먹는 초보 운전자에게는 ‘희망’으로, 이른바 ‘문콕’ 이슈를 해소하는 해결책으로 기대받았다. 수동 주차 대비 더 많은 주차 공간 확보가 가능해 주차난에도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국토부의 개정안은 기계식 주차장 법안을 따르는 방식으로, 업계에서 실효성 문제가 제기되며 여전히 규제에 자유롭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른 의견으로, 주차 이슈 개선을 위해 정부가 나서기 시작했다며 긍정적인 분석을 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올해, 업계에서는 자율주행 주차로봇 기술이 곳곳에서 등장했다. ‘HL만도’는 올해 CES 2024에서 최고혁신상을 수상한 자율주행 주차 로봇 ‘파키(Parkie)’ 통해 주차 혁신을 노린다.
파키는 장애물, 주행로, 번호판, 타이어, 바퀴 사이 거리, 차량 크기 및 무게 등을 감지해 자동으로 주차를 진행하는 로봇이다. 완전 자율화 주행 수준인 ‘자율주행 레벨 4’ 기술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공개 이후 현대차그룹·휴맥스모빌리티·로보틱스랩·카카오모빌리티·케이엠파킹앤스페이스 등 업체와 실전 투입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지난달에는 인천국제공항공사와 인천공항 주차장에 파키를 배치하는 실증 운영을 발표했다. 파키는 최대 3톤의 차량을 들어 올려 최대 속력 15km/h로 주차한다.
지난해 열린 로봇 전시회 ‘2023 로보월드’에서 국내 최초로 자율주행 주차 로봇을 공개한 ‘현대위아’도 이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로보월드 현장에서 중국 로봇 솔루션 업체 지무테크놀로지와 공동 개발한 주차 로봇과 지능형 주차 시스템이 핵심 기술이다.
해당 주차 로봇은 최대 3톤의 차량을 들어 올려 라이다(LiDAR) 센서로 주차에 필요한 차량의 구성요소를 분석·인식한다. 이후 최대 속력 4.3km/h로 주차를 진행한다. 현재 서울 성동구 소재 건물 ‘팩토리얼 성수’ 지하주차장에 투입돼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업계는 주차 로봇이 일상에서 실질적으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계식 주차장과 함께 묶이는 법적 기준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구체적으로 ‘차량 입고를 시작한 후 만차, 그리고 이를 모두 출고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두 시간 이내여야 한다’는 현행 기계식 주차장 기준 규정을 주차 로봇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차 로봇에 입출고 시간을 적용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 규정은 주차량을 늘리는 데 한계를 부여해 주차 로봇에 치명적인 것으로 분석된다.
더불어 주차 로봇이 속한 현행 기계식 주차장 관련 규정 중 주택법에 저촉되는 부분도 문제로 인식된다. 주택법상 기계식 주차장은 실질적 주거 형태인 주택에 설치되면 안 된다. 이는 결국 주차 로봇의 도입 구역 제한으로 이어져 구축 시 분명한 한계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오토메이션월드 최재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