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꿈꾸는 양자 난수 생성 기술 생태계
4차 산업의 핵심 키워드는 '초연결'이다. 초연결은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들에 통신 기술이 들어가 서로 거미줄처럼 연결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중심축이 되는 기술이 바로 사물인터넷(IoT) 기술이다.
IoT 기기는 부착된 센서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주고받는다. 스마트폰, 스마트워치뿐 아니라, 카메라, 온도계, 세탁기, 냉장고 등 가전 제품까지 IoT 기술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영역에 퍼졌다.
IoT 기기가 늘어나면서, 신개념 서비스와 제품들이 등장, 사용자에게 편리성을 제공했으나, 부작용 또한 드러났다. 바로 해킹으로 인한 데이터 유출 문제다. 지난해 아파트 거실에 설치된 월패드의 카메라가 해킹돼 일반 가정집을 촬영한 내부 영상이 무더기로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국가 기관이나 인프라도 해킹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만큼, 데이터 유출 위험은 비단 개인의 문제로 국한될 수 없다는 인식도 팽배해졌다. IoT 산업의 발전에는 반드시 보안 기술의 발전이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2020년 출시된 삼성전자의 '갤럭시 퀀텀'에는 SK텔레콤이 협력사들과 함께 4년여 간의 연구를 거쳐 개발한 특별한 암호 생성 칩이 들어가 있다. 'QRNG(Quantum Random Number Generator, 이하 QRNG)'라는 기술이 적용된 이 칩은 두 개의 후속 모델에도 선택받으면서 강력한 보안성을 인정받았다.
QRNG(양자 난수 생성 기술)는 양자의 특성을 활용해 패턴이 없는 ‘순수 난수(True Random Number)’를 생성해 해커의 공격을 막는 기술이다. SK텔레콤의 QRNG 칩은 광원을 이용해 양자를 생성하는데, 칩에 탑재된 LED에서 나오는 빛의 알갱이가 포토다이오드라는 센서에 들어가 디지털화되면서 난수를 생성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난수가 최소한의 생성 규칙을 가지고 있는 데 반해, QRNG는 빛의 알갱이가 센서에 얼마나 들어가는지를 예측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난수 생성 과정을 아무리 반복해도 매번 다른 난수가 나오기에, 해킹 위험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보안 기술로 꼽히는 QRNG 기술은 미국, 일본, 독일 등에서 문서 보안 인증, 데이터 무결성 검증, 차량용 암호화 통신, 군용 레이더 등에 적용되고 있다. 갤럭시 퀀텀의 QRNG 칩 사용은 위와 같은 양자 암호 기술이 스마트폰과 같은 일반에 적용된 첫 사례다. 업계는 2026년까지 글로벌 QRNG 시장이 약 8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지난 5월 24일 SK텔레콤은 서울 중구 본사에서 협력 관계에 있는 강소기업들과 함께 양자 난수 생성 칩과 관련된 사업 설명회를 열었다. 설명회에선 김동우 SKT 혁신사업개발1팀 리더, 엄상윤 IDQ 지사장, 김한직 KCS 상무, 유미영 옥타코 이사, 김희걸 비트리 부사장 등이 발표자로 나서 QRNG 기술과 사업 생태계 조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SKT와 IDQ는 지난 2020년 갤럭시 퀀텀을 통해 상용화한 QRNG 칩의 확장성과 보안성을 무기로, IoT, UAM, 금융 등 다양한 영역의 국내 암호 개발 기업들을 ‘양자 생태계’로 끌어들인다는 계획이다.
양사는 설명회를 통해 가격 경쟁력 있는 차세대 QRNG 칩 개발로 보안시장의 혁신을 선도하며 양자 생태계의 확대에 앞장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재 SKT는 IoT, 차량용 사이버 보안, 금융 등 영역에서 다양한 업체들과 QRNG를 적용한 솔루션을 연구 중이다.
SK텔레콤은 우선 비트리, KCS, 옥타코 등 국내 암호 분야 강소기업들과 함께 QRNG 기술을 적용, 보안을 강화한 제품을 통해 국내 국방·공공 사업과 글로벌 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QRNG+반도체=양자 암호 원칩'
KCS는 SK텔레콤과 함께, QRNG와 암호 통신 기능의 반도체를 하나로 합친 ‘양자 암호 원칩(Quantum Crypto chip)'을 개발하고 있다.
KCS는 IoT 기반의 다양한 제품 및 디바이스에 강력한 보안을 제공하는 암호칩을 개발하는 기술 기업이다. 그중 독자적인 기술로 만든 KEV7 칩은 국정원으로부터 전체 2등급 암호모듈검증(KCMVP) 인증을 획득, 국내 암호칩 중에서 가장 높은 보안등급을 받았다.
SK텔레콤와 KCS는 개발 중인 ‘양자암호 원칩’으로 국방, 공공기관, 홈네트워크 시장 등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계획의 기저에는 QRNG가 칩 형태로 구현되면 다른 분야의 제품에 적용하기 쉬워질 뿐 아니라, 높은 보안 수준을 요구하는 신기술 분야의 확대와 함께 수요가 늘 것이란 판단이 깔려 있다.
KCS 영업총괄 김한직 상무는 "개발 중인 양자 암호 원칩이 군 무기 체계의 핵심 정보 보호에 적용될 것"이라면서 "카메라, 통신 장비, 드론 등으로부터 들어오는 영상 및 음성 데이터를 암호화하는 데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지난해 발생한 월패드 사태는 현재도 폭발적으로 늘어난 IoT 기술 기반의 가전제품들의 보안이 심각한 문제임을 드러낸 것"이라면서 "내년 출시될 양자 암호 칩을 국방뿐 아니라 공공, 민수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상무는 아울러 "이번 프로젝트는 기존에 보안인증을 이미 받은 KCS 암호칩에 QRNG 칩을 탑재하는 것인 만큼, 인증과정을 단축하고 원가 비용 등을 낮춰, 상품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차세대 QRNG 칩, '성능은↑ 가격은↓'
카메라 IPS IP를 개발하는 영상 처리 전문 기업 비트리는 SK텔레콤, IDQ와 함께 2024년 생산을 목표로 차세대 QRNG 칩을 개발하고 있다.
2016년 SK텔레콤의 제안으로 시작한 QRNG 기술 연구는 4년의 개발 기간을 거쳐 지난 2020년 세계 최초로 상용화로 이어졌다. 개발된 QRNG 칩은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 퀀텀’에 내장됐고, 두 개의 후속 모델로 이어졌다.
IDQ와 비트리는 QRNG의 기술 진화를 목적으로 차세대 QRNG 칩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4년 초 상용화를 목표로 추진 중인 차세대 QRNG 칩은 시장 확산을 겨냥해 기존 칩 대비 작은 크기와 저렴한 가격, 개선된 성능을 목표로 개발 중이다. QRNG 칩은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심플한 공정으로 바꿔 단가를 낮추고, 불량률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비트리 김희걸 부사장은 “QRNG 시장 확산을 위해 IDQ와 함께 현재보다 성능뿐 아니라 가격 경쟁력 있는 차세대 제품을 개발할 계획”이라면서 "현재의 모바일 시장뿐 아니라 CCTV, 로봇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쓸 수 있도록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발 방향에 대해 "구체적으로는 긍정 지수 개선, 활용 범위 확장, 적용 범위 확장, 원가 절감이 목표"라고 밝히면서 "QRNG의 생성 속도와 난수 생성량, 전달 속도를 지금의 2배 이상으로 증가시키는 것도 목표"라고 덧붙였다.
민감한 생체정보를 QRNG로
생체인증 벤처기업 옥타코는 온라인 인증 서비스 기반 카드형 지문보안키(FIDO)에 QRNG 기술을 결합한 지문인식 보안키 ‘이지퀀트(EzQuant)’를 소개했다. 기존에 서비스되던 지문 보안키에 QRNG를 적용해 보안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FIDO는 ‘신속한 온라인 인증’을 뜻하는 'Fast IDentity Online‘의 약자로, 온라인 환경에서 ID, 비밀번호 없이 생체인식 기술을 활용해 개인 인증을 수행하는 기술로, 주로 지문, 홍채 등 신체적 특성의 생체정보(Biometrics)를 이용한다.
‘이지퀀트’는 기존에 생체인증으로 수행하던 PC로그인 및 사내 보안시스템(그룹웨어, ERP, CRM 등)의 모든 인증과 연동할 수 있으며, 사무실 출입에 필요한 NFC 기능을 활용해 출입 보안에도 이용할 수 있다. ‘이지퀀트’는 현재 경기도청과 대전상수도 사업본부, 지하철 통합관제 CCTV 관리자 보안인증 수단으로 채택돼 중요시설 시스템을 보호하고 있다.
옥타코는 QRNG가 결합된 FIDO 기술로 마이크로소프트의 MS365나 구글 클라우드 등 글로벌 오피스 플랫폼과의 연동 및 글로벌 기업·미국 연방정부 인증 서비스까지 공략할 예정이다.
옥타코의 유미영 이사는 "QRNG는 보안성이 높은 기술이다 보니 많은 곳에서 관심을 가져주고 있다"면서 "인도의 주민등록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 '아다하르'를 겨냥한 인증 시스템 사업도 타진 중인 만큼, 다양한 폼팩터를 적용해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IDQ의 엄상윤 지사장은 "QRNG 기술은 아직까지 개발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아직까진 보안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지만 거꾸로 말하면 성장 가능성이 큰 기술"이라면서 "10년 내로 8억 개 이상의 IoT 기기를 QRNG로 연결해 안전한 통신 환경을 갖추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SKT 혁신사업개발팀의 김동호 팀장 역시 "QRNG가 초기 단계 기술이다보니 레퍼런스를 쌓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서 "시장 확대와 제품 다변화를 위해서는 각 분야의 전문 기업들과의 협력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정부, 산학연 등과 생태계를 넓히는 일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토메이션월드 이동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