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주최한 공급망 회의 참석한 韓, 반도체·배터리 활로 열릴까

2021.11.01 10:52:56

헬로티 전자기술 기자 |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이탈리아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3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재하는 '공급망 관련 글로벌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격화하는 미중 기술패권 경쟁 속에 한국은 이른바 '샌드위치'와 같은 상황에 놓이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이날 문 대통령의 '공급망 회의' 참석이 한층 주목을 받는 양상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의 개회사에 이어 두 번째, 14개 초청국가 정상 가운데서는 첫 번째로 발언을 했다. 주최국인 미국이 발언 순서를 이같이 배치한 것으로, 글로벌 공급망 회복에 있어 한국의 중요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청와대 측은 분석했다. 자리 역시 바이든 대통령의 옆에 위치했다. 

 

문 대통령은 "완전한 경제회복을 위해 글로벌 공급망 안정이 시급하다"며, "글로벌 물류대란은 세계 경제의 최대 불안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공동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동맹국들이 협력해 공급망 안정을 이뤄내야 한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구상에 주파수를 맞춘 듯한 발언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세계 정상들이 모여 공급망 회복 방안을 논의하게 된 것을 뜻깊게 생각한다"며 "바이든 대통령의 리더십에 경의를 표한다"라고도 했다.

 

이날 회의는 표면상으로는 바이든 대통령이 공급망 위기로 인한 물류대란 우려를 해소하고자 우호관계 국가들의 정상과 머리를 맞대겠다는 취지로 볼 수 있다. 

 

회의 종료 뒤에는 "회복력 있는 공급망 구축을 위해 투명성, 다양성, 개방성, 예측 가능성, 안전성, 지속가능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장 성명도 발표됐다.

 

이처럼 문 대통령이 미국의 공급망 강화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것은 이런 흐름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한국 경제에도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세계 공급망 회복력 확보는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안"이라며 "나아가 글로벌 경제 재건에 한국이 적극 동참한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며 이번 회의 참석의 배경을 설명했다. 

 

미국은 공급망 회복을 위한 핵심 파트너로 한국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해왔다. 지난 9월 돈 그레이브스 미국 상무부 부장관은 세미나에서 "한국 같은 동맹과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한국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는 모습이다. 지난 5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이노베이션, LG에너지솔루션 등 반도체·배터리·자동차 기업이 약 44조 원에 이르는 미국 신규 투자계획을 발표한 것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 확보 등이 이뤄진다면 기업 입장에서도 공급망 동맹 강화 흐름이 시장을 넓히는 발판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미국의 움직임은 사실상 대중 견제를 위한 행보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상황은 간단하지 않다. 미국이 말하는 안정적인 공급망은 곧 중국에 의존하지 않는 공급망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한국이 미국의 이런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편입하는 것은 중국을 자극할 우려가 있으며, 나아가 최대 안보 동맹인 미국과 최대 교역국인 중국 사이에서 난처한 처지에 놓일 우려도 있다. 

 

실제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전날 G20 정상회의에서 "인위적으로 소그룹을 만들거나 이념으로 선을 긋는 것은 간격을 만들고 장애를 늘릴 뿐이며 과학기술 혁신에 백해무익하다"고 했다.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 4국 협의체) 등 동맹국 중심의 소규모 협력체 활성화는 물론, 반도체 등의 공급망을 둘러싸고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움직임에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날 공급망 회의 참석 국가 역시 호주, 인도, 영국 등 동맹국 위주로 구성됐다. 중국 견제와 맞물린 미국의 '반도체 동맹 강화'가 국내 기업에도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례로 지난달 미국 백악관은 삼성전자 등을 상대로 '45일 내로 반도체 재고와 주문, 판매 등 공급망 정보를 담은 설문지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반도체 업계에서는 지나친 요구라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일단 미국의 공급망 강화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면서도 중국의 움직임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날 공급망 회의의 경우 정상들이 일반적으로 소화하는 일정 가운데 하나임에도 어느 국가가 참석하는지나 구체적인 논의 내용에 시선이 집중되는 배경에는 이런 미중 간 첨예한 경쟁 구도가 자리하는 셈이다.

서재창 기자 eled@hello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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