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티=서재창 기자]
미국과 중국은 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이 배제할 수 없는 주요 교역국이자 거대 시장이다. 그런 두 나라를 대상으로 보인 현대차의 상반된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현대차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달 13일에 오는 2025년까지 미국에 총 74억 달러(약 8조1417억 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투자 계획 안에는 전기차를 비롯해 수소차,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로보틱스 등 현대차가 진행할 미래 사업이 모두 포함돼 있다.
이는 자동차 제조기업에서 미래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을 꿈꾸는 현대차의 청사진이 미국에서 태동한다는 의미다. 비단 이번 투자는 한미 정상회담과 연계된 하나의 전략으로 볼 수 있지만, 여기에는 미래 모빌리티를 앞세워 미국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현대차의 포부도 담겨 있다.
현대차는 미국에서 전기차 생산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심산이다. 현대차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현대차‧기아는 미국에서 122만4758대(현대차 63만8653대, 기아 58만6105대)를 판매했다고 밝혔다. 국내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미국은 동년 현대차 판매량의 약 20%를 기록했다.
가까운 미래에는 내연기관이 차지해온 수출 규모를 전기차가 대체하게 된다. 현대차는 미국이 주장하는 친환경 정책, 바이 아메리카 정책 등을 고려해 미국 내 전기차 생산에 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현대차가 예상하는 미국 내 생산 시점은 내년으로 점쳐진다.
이처럼 현대차의 공격적인 미국 시장 공략은 미국 자율주행 기업인 앱티브와 합작한 모셔널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었다.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 중인 모셔널은 자율주행차 미국 대륙 횡단, 로보택시 시험 사업, 10만 회 이상의 일반인 대상 로보택시 서비스 상용화 등을 선례로 자율주행 시장에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당시 현대차는 모셔널 합작 법인 설립, 인재 영입 등을 위해 20억 달러(약 2조2000억 원) 규모의 자금을 투자했다. 이외에도 수소차, 로보틱스, UAM 등 미국에서 실행될 현대차의 차세대 모빌리티 사업은 현재 진행형이자 미래 지향적이다.
중국은 미국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현대차는 지난달 중국 베이징1공장 매각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베이징1공장은 지난 2019년 4월부터 가동을 중단한 상태며, 2년간의 답보 상태를 거듭했으나 결국 매각 절차를 밟게 됐다.
베이징1공장은 현대차에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곳이다. 현대차가 해외에 지은 첫 번째 생산기지며, 성공적인 중국 시장 공략을 이끌었다. 지난 2008년 2월에는 양산 체제를 갖춘지 약 6년 만에 누적 100만 대 생산을 돌파하며, 빠른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승세는 지난 2016년부터 꺾이기 시작했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한반도 배치로 중국 내 한국 기업 입지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뿐 아니라 가성비에서는 중국 자동차 기업에, 브랜드 파워에서는 유럽 자동차 기업에 밀리면서 점차 경쟁력을 잃어갔다.
2016년 현대차·기아 합산 판매량은 약 179만 대를 기록했으나 작년에는 약 66만 대였다. 현대·기아는 작년 한해만 중국에서 2조 원의 적자를 봐야 했다. 베이징1공장 매각은 중국 내 사업 재편에 대한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이에 현대차는 가성비와 물량으로 승부하던 전략을 뒤로 하고 새로운 전략을 앞세워 중국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는 과거와 달리 제네시스 등 고급차 브랜드와 아이오닉 5, 넥쏘 등 친환경차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재고 물량을 최소화 하는 등 전략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처럼 온도차가 느껴지는 현대차의 시장 공략법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게 될까. 미국의 경우 한국과 일본, 대만 등 동맹국과 연대하는 방식으로 공급망을 재편하고, 중국과의 시장 격차를 벌리겠다는 의지를 지속해서 밝혔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중국의 눈치 아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중국은 연간 약 2500만 대가 판매되는 세계 최대의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 우리나라 완성차 기업 입지는 불안하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 조사에 따르면, 1월부터 4월까지 현대차·기아 중국 시장점유율은 2.6%로, 전년 동기 대비 1.6% 감소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현대차가 펼치는 전략 핵심은 결국 고부가가치 차량 생산이다. 현대차는 오는 2025년까지 내연기관 모델을 14개로 축소하고, 2030년까지 전기차·수소차·하이브리드 등의 모델을 21개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뿐 아니라 현대차는 2040년까지 미국과 중국, 유럽 등에서 전기차 제품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2025년까지 약 100만 대의 전기차 판매를 목표로, 세계 전기차 시장 점유율 10% 달성을 기대하고 있다.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한 현대차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에서 최선의 결과를 끌어내야 하는 입장이다. 양국의 각기 다른 상황과 해결 과제를 앞둔 현대차가 어떤 기술과 플랫폼으로 시장을 공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