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 삼국지] 최후 전선까지 다다른 LG화학-SK이노 소송전

2020.09.03 01:20:39

연합군 내분을 떠올리게 하는 한국 배터리 기업 간 소송 전쟁

 

[헬로티 = 김동원 기자]

 

후한 말, 십상시를 비롯한 환관과 외척의 전횡으로 한나라는 크게 쇠락했다. 벼슬을 돈으로 산 무능한 관리의 횡포와 이를 견디지 못하고 도적이 된 황건적들로 백성들의 삶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황건적의 난이 극심해지자 조정은 20년 이상 지속돼 왔던 당고를 해제하고 청의파 관료들을 기용해 반란을 진압한다. 이 과정에서 힘을 얻은 청의파는 역공을 가해 조정의 십상시와 환관들을 절멸시킨다.


여기서 활약한 이가 원소다. 하지만 원소는 정권을 장악하지 못한다. 대장군 하진의 죽음, 십상시의 난으로 인한 영제의 승하 등 극심한 혼란을 틈타 군대를 이끌고 수도에 입성한 동탁 때문이다. 당시 동탁은 황제의 신병을 확보하고 금군을 장악하며 실세를 쥐었다.


동탁은 십상시보다 더한 존재였다. 그는 황제였던 소제 유변을 폐위하고 진류왕 유협을 옹립하며 정권을 마음대로 휘둘렀다. 공포정치가 끊이지 않고 백성의 삶이 더욱 피폐해지자 영웅들이 나섰다.


조조를 비롯해 원소, 손견, 도겸, 원술, 유비, 유대, 포신 등이 모여 연합군을 결성했다. 연합군의 수장은 원소가 맡았다. 연합군을 중심으로 동탁토벌전이 시작된 것이다.


동탁에게는 천하제일이라 불리는 여포가 있었기에 동탁 토벌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강동의 호랑이로 알려진 손견의 선봉군과 유비 3형제의 활약으로 연합군은 사수관 전투에서 승리한다.


상황이 나빠지자 동탁은 도읍을 낙양에서 장안으로 옮겼다. 동탁은 수도를 옮기며 낙양의 부자들과 그 가족들을 모두 죽이고 재산을 빼앗았다. 또, 백성들을 약탈하고 한나라 황제들의 무덤을 파헤쳐 보물을 챙긴 후 모든 성문에 불을 지르는 행위를 범했다.


동탁이 도읍을 옮기자 조조는 동탁군을 뒤쫓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연합군은 저마다 다른 이익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다른 제후들이 움직이지 않자 결국 조조는 혼자 1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동탁을 이끌고 뒤쫓다 패하고 만다.


원소는 낙양으로 진군하기 조심스러워했다. 혹시나 동탁군의 함정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선봉군인 손견을 보냈다. 


이때 손견은 폐허가 된 낙양에서 옥쇄를 발견한다. 옥쇄를 찾은 건 하늘의 뜻이라 생각한 손견은 원소와 불화가 생기자 강동으로 돌아간다. 그 과정에서 원소에게 편지를 받은 형주 자사 유표로부터 공격을 받아 군사를 절반이나 잃고 겨우 강동에 돌아가게 된다.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연합군에 실망한 조조도 양주로 돌아가고, 유비도 평원으로 돌아간다. 이후 연합군은 식량 문제로 제후들끼리 갈등이 생겨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생겼다. 이에 실망한 원소가 낙양을 떠남으로써 결국 반동탁 연합군은 1년 만에 해체했다.

 

▲ 동탁 토벌을 위해 뭉친 연합군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다 해체가 됐듯 현대사회에서도 많은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동탁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고자 모인 영웅들은 이렇게 서로 자신의 길을 가게 된다. 원소를 중심으로 동탁을 무찌르고자 뭉쳤으나 그 안에서 보이지 않는 갈등이 존재했다. 동탁이 수도를 옮기며 후퇴하자 이 갈등은 표면화되어 제후들은 서로의 이익을 대놓고 추구하기 시작했다.

 

만약 연합군이 똘똘 뭉쳐 조조의 의지대로 동탁의 뒤를 쫓았으면 삼국지의 역사가 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서로의 이익을 추구했다고 이들을 탓할 수는 없다. 완전한 동맹이 아닌 사이에서 자신의 병력과 재산을 아끼면서 보다 좋은 위치로 가려는 것은 당연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연합군 세력이 지금은 아군이지만, 언제든지 적이 돼 자신의 영토를 노릴 가능성은 충분했다. 이들에게는 동탁을 제거한 뒤 누가 정권을 장악하느냐가 중요했다. 연합군 중 누구나 정권을 장악할 자격이 있었고, 욕심도 있었기 때문이다. 왕관은 하나인데 영웅은 많으니 연합군은 그 시작부터 보이지 않는 계략과 다툼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제2의 반도체 시장이라 불리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그렇다. 아무리 가능성 있는 시장이어도 결국 한계가 있고, 이 시장을 차지하려는 훌륭한 기업이 많다. 결국, 기업들 간에는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수면 위로 떠오르는 K-배터리 동맹 이야기


K-배터리 동맹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전기차 배터리 기업에 맞서 한국 기업끼리 뭉쳐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전기차 시장에는 자동차 기업과 배터리 기업이 합작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독일 폭스바겐그룹은 지난해 9월 스웨덴 배터리 제조사인 노스볼트와 배터리 대량 생산을 위한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일본 토요타는 파나소닉과 전기차 배터리 양산을 위한 합작사를 설립했다. 토요타는 중국 전기차 업체 BYD와도 합작 연구·개발 법인을 설립하며 중국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다.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시장의 강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전기차 업체가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중국 배터리 업체와 손을 잡아야 하게끔 시장 구조를 만들었다. 중국 대표 배터리 기업인 CATL은 이를 이용해 테슬라, 혼다 등 글로벌 전기차 업체와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한국 배터리 기업들도 연합전선을 준비하는 분위기다. 국내 대표 배터리 3사는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과 연이어 회동을 가졌다. 국내 대표 완성차 기업인 현대자동차그룹과 배터리 3사 간의 합작을 기대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현대차 입장에서는 전기차 업계의 최강자로 급부상한 테슬라에 맞서기 위해 배터리를 포함해 삼성전자와 같은 첨단 부품 업체들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배터리 기업 역시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완성차 업체와의 협력은 필수다.


K-배터리 동맹이 이어진다면 국내 업계로서 나쁜 점은 없다. 게다가 국내 3사 배터리 기업은 각기 다른 장점을 갖고 있어 협력도 쉬운 편이다.


지난 회동에서 현대차는 삼성SDI에서는 전고체 배터리를, LG화학에서는 리튬-황·장수명 배터리를, SK이노베이션에서는 리튬·메탈, 전력반도체를 주로 논의했다. 각 기업의 강점을 알아보고, 협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모습이었다.

 

▲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핵심기술 및 인력 유출 소송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편집 : 헬로티)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갈등, 여전히 숙제로 남아


하지만 역시 문제는 존재한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핵심기술 및 인력 유출 논란 문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사건은 지난해 4월 붉어졌다. LG화학은 2019년 4월 30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 ITC)와 델라웨어주 연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제소했다. SK이노베이션이 2차전지 핵심인력과 기술을 빼간다는 이유였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2017년부터 불과 2년 만에 연구개발, 생산, 품질, 구매, 영업 등 전지사업 전 직군에서 핵심인력 76명 빼갔다”고 주장했다. 또, “SK이노베이션이 입사 지원 과정에서 자사의 양산기술 및 핵심공정 기술과 함께 프로젝트를 함께한 동료 전원의 실명까지 상세하게 제출하게 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입사 지원 인원들이 집단적으로 공모해 핵심기술 자료를 유출시켰다는 게 LG화학의 의견이다.


SK이노베이션도 두 손 들고 있지 않았다. SK이노베이션은 “우리의 배터리 개발기술 및 생산방식이 다르고 이미 핵심 기술력 자체가 세계 최고 수준이 올라와 있어 경쟁사의 기술이나 영업비밀이 필요 없다”고 맞섰다. 또, “LG화학이 주장하는 형태인 빼오기 식으로 인력을 채용한 적이 없고 모두 자발적으로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과는 LG화학의 승리였다. 올해 2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SK이노베이션에 대해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LG화학의 배터리 기술을 빼낸) 증거를 인멸했다”며 조기 패소 결정을 내렸다.


LG화학은 한국에서의 재판에서도 승리했다. 지난 8월 27일, 서울중앙지법은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침해 관련 소 취하 및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LG화학의 손을 들어줬다. SK이노베이션이 청구한 소송취하절차 이행 및 간접강제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손해배상 청구도 마찬가지였다.

 

▲ 올해 2월 ITC는 SK이노베이션이 증거인멸과 포렌식 명령 위반 등 법정을 모독했다고 판단해 조기 패소 판결을 내렸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배당금 문제로 협상 난항


상황은 SK이노베이션이 불리하다. ITC에서 조기 패소한 SK이노베이션은 한국 재판에서도 졌다. ITC 최종판결은 10월 5일에 진행된다. ITC는 통상 조기 패소 판결을 번복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ITC 통계에 따르면, 영업비밀 침해 소송은 모든 사건에서 ITC 예비 결정이 최종결정으로 유지됐다.


SK이노베이션이 10월 5일 ITC 최종판결에서 패한다면 미국 내 배터리 생산이 불가능해진다. 부품, 소재 등 미국 내 수입 금지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최종판결 뒤 연방지방법원 민사소송 등 선택지는 많지만, SK이노베이션이 들고 있는 가장 쉬운 답안지는 협상이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월 ITC 조기패소 판결 이후, 이미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협상을 한 바 있다. 하지만 양사가 제시하는 배상금 액수 차이가 너무 커 협상은 중단됐다.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배당금으로 2조 원 안팎을 예상한다고 전해졌다. 현실적으로 1조 원 초반대를 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SK이노베이션은 1조 원 이하를 생각하는 것을 알려졌다. 3000억 원에서 5000억 원 사이를 기대한다는 얘기도 있다.


금융업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은 1조 원, LG화학은 3조 원에 협상으로 가닥을 잡는 분위기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 측은 “조 단위 배상을 하는 것은 배터리 사업을 접으라는 얘기”라면서 1조 원 이상 배상은 어렵다는 후문이다.

 

▲ 배당금 협상을 두고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줄다리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두 기업 사이에 세워진 거대한 벽, 허물어질 수 있을까?


SNE리서치가 발표한 올해 전반기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 순위에서 국내 배터리 3사 모두 10위권 안에 있다. LG화학은 일본의 파나소닉과 중국의 CATL을 이기고 1위를 기록했다. 삼성SDI는 4위, SK이노베이션은 6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시장 상황을 보면 이 순위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내부싸움이 길어져선 안 된다고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두 기업이 자존심을 앞세우기보다 경영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싸움을 중재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 사장의 회동 자리를 주선한 것 말고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민간기업 간 협상에 개입할 경우 직권남용과 압력행사로 보일 가능성이 있기에 조심하는 분위기다.


한편으로 이번 사태는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2차전지 핵심인력과 기술을 뺏어간 것은 엄연한 범죄”라면서 “현재 배터리 시장에 국내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도덕적인 문제를 정확히 처리해야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원 기자 eled@hello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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