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헬로티]
국내 전력 산업, 변화가 필요하다
아무리 튼튼한 나무여도 뿌리가 썩기 시작하면 얼마가지 않아 쓰러지게 되어 있다. 한국 전력 산업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국가 전반의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외부적으로 기후변화 대응, 연료수급 불안정 문제를 겪고 있고, 내부적으로는 사회적 수용 확보, 에너지 가격체계 왜곡 등의 과제를 안고 있다.
내외부적 문제 겪고 있는 국내 전력 산업
국내 전력 산업이 외부적으로 가진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에너지 상대가격 조정 정책이다. ‘2018 에너지 포럼’에서 ‘전력산업 환경 변화와 발전 전략’에 대해 발표한 서울대학교 기술경영경제정책대학원의 이종수 교수는 “전력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및 안전 관련 사회적 비용을 내재화하여 에너지원별·부문별 상대가격 왜곡 현상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특히 발전용 유연탄과 원자력 과세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차례 유연탄 과세 상향에도 불구하고 석탄발전은 여전히 가장 경제적인 발전원으로서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유연탄 과세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원전 안전 및 폐기물 등 환경 측면의 외부효과가 국민적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원자력 과세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교수는 또 통합에너지 세제 도입 등 에너지 가격체계 개편을 통해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이 시장원리에 따라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각 에너지원의 정책변화가 전체 에너지 믹스에 미치는 영향을 바탕으로 세제 구조를 조정해야 한다”면서 “국가경제의 효율성과 형평성, 환경목표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통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한국 전력 산업이 내부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인 에너지 상대가격 왜곡도 서둘러 조절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2차 에너지인 전기 가격이 1차 에너지인 유류 가격보다 낮다. 이러한 구조를 지닌 국가는 주요 OECD 국가 중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은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전기요금 증가 수준도 매우 낮은 편이다.
가격이 낮은 만큼, 국내 전기 사용량은 높은 편이다. 전기 사용량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1차 에너지인 유류의 소비는 감소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에너지 상대가격 왜곡에 따라 에너지믹스 조절에 실패하면서 경제적, 환경적, 인프라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종수 교수는 “한국은 에너지 수입이 증가하고 있고,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가 증대하고 있다. 발전 수뿐만 아니라 전력망 등의 전력시스템의 입지도 포화상태다”라며 “발전부문 외부비용을 적절히 내부화함으로써 에너지 상대가격 왜곡 현상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기요금을 더 낼 것인가, 지금의 에너지 서비스에 만족할 것인가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6월 20일, 2022년까지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산자부는 원전 발전 비중이 줄어 전기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일부 언론 보도와 관련해 해명자료를 내고 “장기적으로 2022년까지 기저 전원에 여유가 있어 전기요금 인상 요인은 거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기저 전원은 원전과 석탄발전 등 상대적으로 발전단가가 저렴해 국내 발전의 바탕이 되는 전력원을 의미한다.
산자부는 최근 발생했던 원전 가동률 감소에 대해선 “4월까지 원전 가동률이 감소한 원인은 예방정비 과정에서 발견된 안전 문제점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일부 원전이 일시적으로 가동 중지됐기 때문”이라며 “(원전 가동률 하락은) 탈원전 정책과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이어 산자부는 “계획 예방정비가 끝난 뒤 하반기부터 원전이 정상적으로 가동되면 한국전력의 재무구조가 개선되면서 전기요금과 관련한 부담도 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기요금 상승을 걱정하지 말라는 산자부의 발표와는 달리, 국민은 전기요금 인상을 월 1만 5,013원까지 감내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산자부의 발표가 있던 같은 날, 현대경제연구원은 ‘원전 및 에너지 정책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에서 국민들은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위해 전기요금을 현재보다 월평균 1만 5,013원을 더 부담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한 찬반 질문에는 응답자의 84.6%가 찬성이라고 답했다.
국내 전력 산업이 겪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또 에너지 전환 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선 전기요금 상승이 필요하다.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의 허은녕 교수는 “현재 에너지 R&D에 투자되는 비용은 2조 원이다. 반면, 정보통신 쪽의 투자비용은 20조 원이다”라며 “투자가 되지 않는 한 국내 에너지는 발전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허 교수는 “서울대학교에 건물을 새로 지었는데 지금도 전원 스위치를 사람이 직접 켜고 끈다. 앞으로도 지금과 똑같은 에너지 서비스를 받고 싶으면 투자를 안 하면 된다. 하지만 새로운 에너지 서비스를 즐기고 미래 세대를 위한 에너지 전환을 이루기 위해선 전기요금 상승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어떤 길을 선택할지는 국민의 몫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