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헬로티]
2017년 말, 산업통상자원부는 ‘제2회 재생에너지 정책협의회’에서 ‘재생에너지 3020 이행 계획’을 발표했다. 2030년에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20%로 늘린다는 이 계획은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공약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재생에너지 3020 계획은 과연 실현 가능할까? 전기설비기술기준 워크숍 ‘SETIC 2018’에 참석, 각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은퇴 앞둔 화석연료, 떠오르는 슈퍼루키 재생에너지
화석연료의 전성기가 끝났다. 이젠 재생에너지다. 화석연료는 전 세계 산업 발전의 주요 에너지원이었다. 지금의 산업 성장은 화석연료가 이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화석연료는 끝내 아킬레스건을 극복하지 못했다. 한정된 매장량과 온실가스 배출이 발목을 잡았다. 여기에 슈퍼루키 에너지원인 재생에너지가 등장했다. 산업 성장을 빛낸 보석이 찬밥신세가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슈퍼루키로 떠오른 재생에너지는 태양과 바람, 바이오매스 등에서 얻는 친환경 에너지원이다. 자원이 고갈될 위험은 제로에 가깝다. 유럽연합(EU)은 일찍이 화석연료를 은퇴시키고, 재생에너지 전환을 시도했다. 그 결과 유럽은 15년간 풍력, 가스발전, 태양광 순으로 발전설비용량이 증가했고, 석유 화력, 석탄 화력, 원전 순으로 용량이 감소했다. 독일은 풍력발전 사업에 주력해 2017년 전체 전력소비량 중 36%를 재생에너지로 수급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독일은 202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40~45%로 높인다는 구상이다. 4일 동안 필요한 전력을 재생에너지로만 생산해 세계의 귀감을 샀던 포르투갈은 202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 목표를 60%로 설정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와 뉴욕은 2030년까지 50%, 이웃 국가인 일본은 같은 기간 22~24%로 목표를 정했다.
투자 현황만 보아도 세계 각국이 재생에너지 사업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21세기 글로벌 신재생에너지 정책 네트워크인 ‘REN21(Renewable Energy Policy Network for the 21st century)’이 발표한 ‘신재생에너지 2017 세계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재생에너지 설비 건설에 투입된 비용은 전 세계 통틀어 2,498억 달러였다. 태양광 에너지에 1,137억 달러가 투입됐고, 풍력 에너지에는 1,125억 달러, 화력발전설비에는 1,138억 달러가 투입됐다. 재생에너지 설비 건설에 투입된 비용은 신규 발전설비 투자의 63.5%에 달하는 규모다. BNEF(Bloomberg New Energy Finance)는 ‘New Energy Outlook 2016’을 발표하며, 2040년까지 신규 발전설비 투자 10조 2천억 달러 중 72%가 태양광 에너지와 풍력 에너지 설비 건설에 투자된다고 전망했다.
같은 보고서에서 BNEF는 재생에너지가 조만간 화석연료보다 저렴해질 것으로 판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과 인도 영국 등의 국가에서는 2021년부터 태양광 에너지가 석탄보다 저렴해진다. 세계 산업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줬던 화석연료의 은퇴식이 머지않은 셈이다.
<사진=김동원 기자>
슈퍼루키 에너지원 국내 활약 예고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자 시절, 6대 에너지 정책을 공약했다. 원전 제로, 청정에너지 발전 시대 마련, 신재생에너지 전력생산량 2030년까지 20% 확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에너지 생태계 구축, 친환경 에너지 세제 개편, 에너지 소비 산업구조 효율적 전환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6월 19일, 고리1호기 영구 정지 기념행사를 가지며 6대 에너지 정책의 시동을 걸었다. 2017년 말에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 계획’을 발표하며 에너지 정책을 고속도로 위에 올려놓았다. 신재생 보급 정부 지원사업을 조성했고, 보조금이나 금융 정책 등을 선보였다. 태양광 대여사업, 친환경에너지타운, 주민참여형 발전사업 등 시장기능 비즈니스 모델도 발표했다. 재생에너지 3020 이행 역량 강화를 위한 신재생에너지정책단도 신설했다. 슈퍼루키 에너지원의 국내 활약이 예고된 셈이다.
재생에너지 3020 이행 계획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20%로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2017년 말 한국의 재생에너지발전량 비중은 7%였다. 13년 안에 13% 발전량을 높여야 한다. 2017년 15GW였던 설비용량을 2030년에는 약 64GW로 증가시켜야 한다. 정부는 신규 용량 약 49GW의 대부분을 태양광(31GW)과 풍력(16.5GW)으로 공급할 전망이다.
재생에너지 3020의 기본 방향은 투 트랙(Two Track)이다. 대규모 프로젝트를 적기에 추진하고 소규모 사업에 국민 참여를 이끌어내는 게 골자다. 분야는 태양광과 풍력 등 청정에너지다. 특히 태양광 에너지와 풍력 에너지를 2030년에 80% 이상(2016년, 38%) 확대해 선진국 수준의 반열에 오르겠다는 의도다. 한국전력공사의 홍종천 차장은 “정부는 재생에너지 생산 목표를 2030년 약 64GW로 정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올해 이후 매년 약 3.7GW 개발이 필요하다. 한전은 정부 목표의 20%(약 13.2GW)를 개발하는 것을 사업목표로 정하고, 재생에너지 3020 계획이 가능하도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김동원 기자>
재생에너지 3020,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다면 재생에너지 3020은 실현할 수 있는 과제일까? 지난 4월 10일부터 3일간 진행된 전기설비기술기준 워크숍 ‘SETIC 2018’에서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의 이상훈 소장은 재생에너지 3020 계획이 원활히 이행된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전력 수요가 안정된 가운데 재생에너지 증가율이 두 배로 빨라진다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 20%는 달성 가능한 수준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소장은 “최근 국내 전력 수요는 안정되는 추세이며, 태양광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보급이 빨라지고 있다”며 “덴마크와 스페인, 독일 등의 국가는 재생에너지 전력량 비중이 빠르게 증가했다. 지금 한국의 분위기도 유럽 국가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사실 한국에는 에너지원의 슈퍼루키, 재생에너지가 데뷔할 무대가 적었다. 유럽처럼 다른 나라에서 전력을 수입할 여건도 안 되고, 기후 조건도 재생에너지 활용에 유리하지 않다. 인구 밀도도 높아 발전소 부지 선정도 쉽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정부는 재생에너지 3020 계획을 준비하며, 슈퍼루키의 데뷔 무대를 찾아냈다. 이 소장은 “최근 평가된 재생에너지 전력 보급 잠재량은 현재 전력 수요의 약 65%에 달한다”며 “태양광의 경우 지붕과 수면에, 풍력은 해상에 보급 잠재량이 상당히 분포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재생에너지 보급 잠재량은 시간의 함수로 기술 변화에 따라 계속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태양광으로 40GW 전력을 생산하는 독일과 43GW 전력을 생산하는 일본의 태양광 시설은 지붕과 유휴부지에 있다. 건물 벽면과 창호, 지붕 자재를 겸한 건물 일체형 태양광(BIPV)을 확대하고, 농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해 농업 공존형 태양광을 확대한다면, 태양광 보급 잠재량 확대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 소장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는 원예 및 농업과 태양광을 접목하는 시도가 증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충북 오창과 경남 함안에 벼를 재배하면서 동시에 태양광을 발전시킨 사례가 있다”고 소개했다.
이 소장은 재생에너지 설비를 확대하면 전기요금이 폭등할 수 있다는 우려도 일단락시켰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보급 비용을 전기요금에 반영할 경우 점진적으로 전기요금이 상승하나 큰 충격은 없다. 재생에너지 발전원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하락하므로 전기요금 상승 요인 역시 감소한다. 이 소장은 “실제로 독일은 가정용 전기요금의 약 20%만이 재생에너지 부과금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변동하는 재생에너지 전력 비중이 증가하면 전력계통 안정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에도 답안을 제시했다. 그는 “IEA는 일정 수준까지 계통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다”면서 “재생에너지 발전량 증가로 전력계통 안정을 위한 대책과 조치를 사전에 준비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보급 후발국의 입장이라 유리한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재생에너지 몸집 키우기 대작전
재생에너지 3020 정책이 실현 가능성이 높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야 하는 법.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실제로 3월 16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 성공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는 “많은 지자체들이 재생에너지3020 이행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기다리고 있다. 민원·행정업무를 맡은 기초지자체 공무원들은 이행계획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거나 피부로 실감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현장의 목소리도 있었다.
‘SETIC 2018’ 워크숍에서 ‘기후변화/에너지 정책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발표한 한국에너지공단의 김강원 팀장은 재생에너지 3020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재생에너지 보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청정에너지 비율이 낮다. 바이오와 폐기물이 74% 몸집을 자랑한다면, 태양광은 13.1%, 풍력은 4.3%로 저체중이다. 태양광의 경우 지붕에 설치해 몸집을 키울 수 있다지만, 이마저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국민 참여가 부족한 까닭이다. 주택이나 공장, 농촌에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주민 승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국내 상황은 전체 전기사용 가구의 1.1%(24만 호)만이 자가용 보급가구일 정도로 참여 의식이 적다.
각종 규제도 발목을 잡는다. 입지규제나 국공유지 임대기준은 재생에너지 사업 확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규제는 심한데 규모 경제 달성을 위한 대형 프로젝트는 부재하다. 현재 진행되는 프로젝트는 풍력 40MW 4개, 태양광 38MW 1개뿐이다. 김강원 팀장은 “갈수록 분산에너지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 따라서 Utility scale 규모 경제로 발전단가를 인하하면서 주택과 빌딩, 공장 등을 통해 분산에너지 사업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재생에너지 사업을 위해선 주민참여가 필수다. 지방자치단체 보급목표를 설정해 지역재생에너지 계획을 수립하고, 전 국민 참여 클라우딩 펀드를 조성과 1가구 1발전소 캠페인 등을 진행하면 주민참여가 상승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 팀장은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위한 제도 개선도 언급했다. 그는 “빛 반사, 전자파 자기장, 저주파 소음 등 신재생 포비아(Phobia) 극복에 대한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 에너지프로시머 도입, 그린프라이싱, 입찰 시장 개선, 세제 개편, 급전 방식 변경 등의 전력시장 시스템 개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생에너지 정책을 성사시키려면 기업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 김 팀장은 재생에너지 스타트업 지원과 신재생에너지 창업 지원 교육이 밑바탕 돼야 사업 성장이 이뤄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공공기관에서 재생사업을 추진할 경우 지역 상생 및 사회공헌 등 이익 공유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그는 “재생에너지 시설 관련 초기 설치부담금도 완화해야 한다. 건물 옥상 지붕 등 구분지상권을 설정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잡종지로 지목변경 없이 태양광발전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한, 개발부담금과 농지전용부담금도 경감하고 20년 분할 납부를 허용하면 태양광 발전 사업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한국전력공사의 홍종천 차장은 “한국 재생에너지 기술 수준은 선진국 대비 약 77.6%에 불과하다. 기술선도 기업이 부재하고 기술을 배양할 수 있는 지원도 적은 탓이다. 이러한 점이 개선돼야 재생에너지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