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최근 「정부 R&D 혁신방안」에서 ETRI를 비롯한 여섯 개 정부출연연구소(1)를 ‘한국형 프라운호퍼’ 연구소로 혁신한다고 밝혔다. 막스 플랑크, 헬름홀츠, 라이프니츠와 함께 독일 4대 연구소로 꼽히는 프라운호퍼 뮌헨 본사를 직접 찾아가 프라운호퍼가 주목받는 이유와 그 운영 방식을 알아보고, 그들이 주도하고 있는 독일 인더스트리 4.0에 대해 살폈다.
사진 1. 프라운호퍼 뮌헨본사 입구와 외부 전경
프라운호퍼협회는 1949년 독일 연방 정부의 주도로 설립된 독일의 대표적인 출연연구기관이자, 독일 전역에 67개의 연구소를 두고 있는 유럽 최대의 응용과학기술연구기관이다.
‘프라운호퍼’라는 이름은 태양 스펙트럼에서 흑선(프라운호퍼선)을 발견한 물리학자이자 광학 연구소의 경영인이었던 요제프 폰 프라운호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요제프 폰 프라운호퍼가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경영인이었던 것처럼, 프라운호퍼협회는 시장에서 상용화될 수 있는 과학기술을 연구해 산업과 과학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프라운호퍼협회는 산업 분야와 사회에 광범위하게 기여할 수 있는 응용과학을 목표로 연구하고 있으며,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시장 지향적 연구를 진행하는 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의 흐름에 발맞추어 최신 기술을 연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크게 교통 분야에서는 무인주행, 제조업 분야에서는 스마트 생산, 사이버 물리 시스템, 정보 통신 분야에서는 IT 보안 등의 연구를 진행 중이다.
65% 민간 수탁
프라운호퍼협회는 독일 연방 정부 주도로 설립되었지만, 재원 마련에서는 정부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다. 현재 재정의 약 35%만을 독일 연방정부와 주 정부로부터 지원받고 있으며 나머지 65%는 민간 수탁으로 채우고 있다. 이는 한국 정부출연연구소 예산의 88.8%가 정부 재원으로 충족되고 있는 것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차이가 있다. 이렇게 재정의 독립성이 이루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구의 독립성 또한 보장되고 있다.
프라운호퍼 연구자들은 스스로 어떤 분야의 연구를 어떤 내용으로, 재원을 어떻게 분배하여 진행할 것인지를 자유롭게 결정함으로써 연구의 성과와 질을 높이고 있다.
활발한 협력 활동
프라운호퍼협회의 67개 연구소는 각각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연구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필요에 따라 타 연구소나 연구자와 적극적인 협력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특히 인더스트리 4.0에서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이 활발히 융합된 것처럼 각 분야 간 장벽을 허무는 융합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처럼 연구소들이 협력관계를 맺는 것을 ‘프라운호퍼 얼라이언스’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여러 분야에 걸쳐 있는 연구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며, 연구 주제가 애매모호할 경우에는 자문을 통해 적절한 연구소가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도록 의사결정을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프라운호퍼는 각 연구소의 소장을 대학교수로 임명하고, 대학 연구기관들과도 연구 협력하는 등 대학들과의 밀접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또한, 해외 각지에 지사, 프로젝트 센터, 사무소를 두고 있어 해외 시장 환경에 맞는 연구 프로젝트를 바로바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대기업, 하이테크 기업(R&D에 3.5% 이상을 투자하는 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비 R&D기업(R&D에 3.5% 미만을 투자하는 기업)을 위한 연구도 진행함으로써 산업 전반의 기술 연구에 힘쓰고 있다. 즉 이런 일련의 연구 활동의 중심에 있음으로써 대학과 기업을 잇는 가교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기술R&D의 격차를 줄이고 산업의 혁신, 독일의 혁신에 기여하고 있다.
프라운호퍼의 또 다른 강점, 스핀오프
프라운호퍼 연구소가 시장 진입을 보다 쉽게 하는 주요 요인은 바로 스핀오프(분사)이다. 스핀오프는 내부 연구원들이 창업해 새로운 기업을 설립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를 통해 직접 시장을 창출해나감으로써, 프라운호퍼 협회와 스핀오프 기업 간, 스핀오프 기업들 간 협력적 네트워크를 강화해 상호 이익을 극대화해 나가고 있다. 또한, 스핀오프를 통해 시장의 현황과 변화를 빠르게 감지할 수 있어 첨단 기술을 상용화하는데도 유리하다.
연간 40여 개의 스핀오프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스핀오프 기업 설립 후 초기 3년간 파산율은 4% 미만으로 매우 낮은 편이다. 프라운호퍼는 스핀오프 기업의 지분을 판매하여 이익을 얻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R&D, 라이선싱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을 상위 목표로 두고 있고, 실제로도 신설 스핀오프 기업들의 R&D와 라이선싱 수익은 연간 약 2천만 유로에 달하고 있어 성공적인 사례를 계속해서 만들어나가고 있다.
프라운호퍼는 스핀오프를 인력 유출, 기술 유출로 보지 않고 인력과 기술의 산업 이전으로 보고 스핀오프 전담 부서에서 자금 문제, 특허권 문제를 다루는 등 스핀오프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인재 채용과 관리 시스템
2014년 독일 이공계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프라운호퍼는 ‘대학생들이 일하고 싶어 하는 기업 3위’에 올랐으며(2), 내부 직원 만족도 조사에서도 무려 응답자의 80% 이상이 “프라운호퍼의 가치와 문화는 나 자신의 가치, 문화와 부합하며 프라운호퍼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대내·외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독특한 인재 철학과 자율성 보장에 있다.
사진 2. 강의에서 토의하고 있는 연구원들
프라운호퍼협회는 채용 시부터 “영업 능력이 있는” 연구자들을 선호한다. 여기에서 ‘영업 능력이 있는’ 연구자라는 것은 자신의 연구 성과물이 시장에서 잘 팔릴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에 관심을 두고 판단할 수 있는 연구자를 말하는 것이다. 시장 지향적인 연구를 하는 프라운호퍼에 있어 연구자의 이러한 성향과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곳의 연구원들은 자신의 연구 결과물을 시장에 직접 선보임으로써 성취감을 얻고, 반복되는 연구에서 벗어나 경영을 경험함으로써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이다.
이곳에서 연구자들은 평소에 관심이 있던 신기술들을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다. 이 같은 연구의 자율성은 특별한 금전적 혜택, 복지 혜택 없이도 연구자에게 높은 만족을 준다. 또한, 연구직과 행정직의 비율이 5:5(3)로 연구자들은 복잡한 행정 절차, 업무에 대한 걱정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프라운호퍼의 과학기술 연구직, 행정직 직원 중 절반가량은 기간제 계약직 직원들이다. 2년 기간의 계약을 맺고 그 이후 두 번의 기간 연장이 가능해 총 6년간 근무를 할 수 있다. 그런 후에 프라운호퍼에서 종신직으로 계속 있을지 아닐지를 결정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직원들은 대부분 프라운호퍼 연구소에서 경력을 쌓은 후 기업의 연구직으로 옮겨 가는 편이다.
계약 기간이 끝난 후 재취업에 대한 걱정이 있지 않을까 싶지만, 처음 2년 계약 근무 후 80%가 다른 기업의 연구소에 취업이 되기 때문에 대체로 계약이 끝난 직원들의 거의 모두가 재취업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과학기술 연구직 및 행정직의 파트타임 직원들의 비율도 2014년 기준 전체의 25.43%로 상당한데, 파트타임 직원들은 업무 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 만족하고, 연구소 입장에서는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필요할 때마다 연구 인력을 쉽게 고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자율성 보장’만으로 높은 직원 만족도를 정말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말에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자에게는 가장 큰 장점이며,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프라운호퍼에 오는 사람은 없다”고 답하는 프라운호퍼 관계자의 말에서, 연구자가 즐겁게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혁신을 이끄는 연구 성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아닐는지 생각해 본다.
(注 1)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국생산기술연구원(KITECH), 한국전기연구원(KERI), 한국화확연구원(KRICT), 한국기계연구원(KIMM), 재료연구소(KIMS)
(注 2) 설문기관 : 獨, Universum HR consulting
(注 3) 한국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경우 연구직대 행정직의 비율이 9:1에 달함
김정민 _ IMD CENTER 연구원